여성장애인 성폭력 실태 토론회 열려
여성이면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을 위협하는 성폭력의 문제를 짚어보고 대책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상임대표 이예자)은 16일 오후 2시, 부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아래 서울상담소) 개소 2주년을 맞아 '여성장애인 성폭력의 특성과 대책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가졌다.
지난 99년, 한 정신지체 여성장애인(당시 20세)이 13세부터 7년 동안이나 몇몇 마을 주민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커다란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으나, 이듬해에도 여성장애인 성폭행 사건들이 계속 이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서울상담소의 활동이 시작됐다.
장명숙 서울상담소 소장은 2002년 한해 동안의 서울지역 상담 사례를 피해 여성장애인의 학력, 연령, 장애인 등록 시기 등의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장 소장은 "밝혀진 87건의 피해사건 중 피해자가 무학인 경우가 23건을 차지하는데, 이 경우 사건이 형사 고소되고 재판까지 간다고 하더라도피해자들이 의사표현에서부터 불리함을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성폭력 피해를 당하기 이전에 장애인 등록을 한 경우가 전체 87건 중 77건으로 88.5%를 차지한다. 이에 대해 장 소장은 "학력이나 직업의 조건이 나쁜 장애인만이 성폭력 피해를 당할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을 뒤엎는 것"이라며, "이는 장애인 등록조차 하지 못한 열악한 환경의 장애인은 성폭력 피해를 당해도 상담소에조차 접근하지 못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인구의 10%를 장애인으로 추정하는 세계보건기구의 기준에 따르면, 한국의 장애인 인구는 450만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등록된 장애인은 130만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상담소를 찾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등록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숨겨진 성폭력 피해자의 존재를 반증한다는 것이다.
장 소장은 또 피해 유형에서 강간 비율이 83.9%라는 압도적 수치를 나타내는 것에 대해 "장애인의 취약성을 악용하여 자행되는 여성장애인 성폭력 실태를 잘 보여준다"면서 "이는 강간 이외의 은폐된 성추행과 성희롱도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이날 참가자들은 여성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지원 확대와 사회 전반에 걸친 예방·치유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성폭력 피해여성을 위한 지정 병원조차 시설미비를 이유로 여성장애인을 기피하는 현실, 성폭력 피해가 밝혀진 이후에도 성폭력 위험이 존재하는 가정과 지역에 방치될 수밖에 없는 여성장애인들의 처지를 고려해 지원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의 수사를 일일이 쫓아다니며 조사에 참여해 왔다는 권순기 대구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여성장애인 성폭력 사건을 평생에 처음 맡았다는 경찰에게 어떻게 전문성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수사나 재판 과정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장애여성과 성폭력 문제에 전문적 인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