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종교운동을 시작하면서, 왜 운동을 하느냐는 질문에 내가 할 수 있었던 대답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 30대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내게 똑같은 질문을 해온다면 아마 같은 대답을 할 것 같다. 하지만 20대에 내가 가졌던 열정이 지금껏 동일한 무게감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 열정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남았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집중과 헌신 그리고 성찰'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의욕만 앞서던 내게 '어떻게'라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일깨워준 곳은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 하우스였다. 20대를 접고 30대로 진입하는 시기, 캘커타에서 경험했던 자원활동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배울 수 있었던 계기였다.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서, 또한 자원활동가의 손길이 필요한 인도인들로부터.
내가 캘커타에서 했던 일은 칼리가트(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집)나 프렌담(갈 곳 없고 병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의 바닥을 청소하거나, 옷과 침구류를 빨래하거나,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다. 날씨가 따뜻하면 양지에 앉아 인도인과 함께 햇볕을 쬐거나 머리에 살고 있는 이를 잡기도 하였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야말로 "넓은 바다의 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단순하기 짝이 없는 그 일에서 나는 '운동의 영성이란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막연한 깨달음에 이르렀다. 가진 것 없어도 그날 그날의 빵에 기도를 올릴 수 있는 사람들,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언제나 해맑게 웃으며 유머를 잃지 않던 자원활동가들, 죽어 가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수녀님들, 가족과 사회로부터 배척 당해 외로워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려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비슷하게 그들과 닮아지려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고나 할까? 사회운동이란 자기 자신을 희생해가며 박해받는 것이라고만 알아왔던 내게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란 기쁘고 즐거움을 체험하는 길임을 알게 했다. 사회적 실천과 개인의 행복이 합일되는 순간의 기쁨이 동시에 느껴졌다.
누구라도 그렇듯 살면서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인권운동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자활의 기초를 제공하고,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고 적절한 주거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러나 앞서 열거한 것들 못지 않게 나를 잡아끄는 것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난이 무엇인지 알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지 않겠어요?" 라고 반문하는 마더 테레사의 울림이다. 사실, 지금 나는 가난하지 않다.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했던 캘커타에서의 삶은 사회변혁과 개인변혁이라는 것이 뗄 수 없는 함수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캘커타에서 보낸 시간이 그립다. 사회적 실천이 동시에 개인의 순수한 행복과 합치되었던 순간의 기쁨이 내 몸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일까?
(최은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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