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최근 논쟁이 되고 있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관련된 쟁점과 대안을 3회에 걸쳐 싣는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낡은 역사적 명제 앞에서, 제가 선택한 것은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는 새로운 관점과 접근이라고 하겠습니다" 2001년 12월 평화적 신념에 따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택한 오태양 씨의 말.
지난달 21일 법원이 최초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후, 점차 그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법원의 판결에 혼선이 가중되면서 처벌의 기준이 되는 병역법의 위헌제청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재촉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헌법에서 드러나는 '양심의 자유' 의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가 '병역의 의무'와 부딪친다고 지적한다. 헌재는 '양심의 자유'를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 정의하고 있다. 또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아니 되는 내심적 자유는 물론…윤리적 판단사항에 관한 침묵의 자유까지 포괄한다"고 보고 있다. 반면, '양심실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어떠한 형태로건 외부로 드러날 때는 타인의 기본권이나 다른 헌법적 질서와 저촉되는 경우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법률에 의하여 제한될 수 있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양심은 '내심의 영역'과 '실현의 영역'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양심의 자유는 실현의 자유를 통해서 보장될 수밖에 없다.
안보 개념, 인권·평화 담론으로 재구성해야
국방부는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2001)'에서 "우리가 오늘의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보편적이고 선량한 양심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선량한 양심'을 보호해야할 국방부가 '오늘의 자유와 행복'이 '선량한 양심들의 희생'을 통해 지속되는 것임을 인정한 것. 이에 비해 서울남부지방법원 이정렬 판사는 "국가의 형벌권과 개인의 양심의 자유권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형벌권이 한발 양보하여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결해 주목을 받았다. 국방부가 계속해서 '양심의 희
생'을 요구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적 권리에 대한 침해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국방부는 "병역거부 행위는 남북으로 분단된 특수한 우리의 안보환경 하에서…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국가안보를 이유로 양심의 자유 제한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는 바로 '냉전적 사고방식'의 전형이다. 역사적으로 국가안보를 위협한 것은 오히려 군대와 전쟁이었다. 때문에 안보의 개념을 군대와 경찰의 힘으로 유지되는 '국가안보'가 아닌 인권과 평화의 가치관을 담은 '인간안보'로 재구성해야 한다.
전쟁시라도 병역거부권 인정돼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역사적으로 평화시기보다는 전쟁시기에 활발하게 일어났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미국에서는 약 4만 명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전세계 평화·반전운동으로 이어졌으며 베트남 전쟁 당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후 미국은 결국 모병제로 전환했으며, 걸프전 때에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이어졌다. 사람을 죽이는 일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병역거부가 국가에 의해 합법적으로 살인이 자행되는 전쟁시기에 오히려 활발해졌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처럼 극단적 상황에 있어서조차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바로 헌법적 의미에서 본 '양심의 자유'의 본질일 것이다.
국제적으로 볼 때에도 전세계 162개나라 중 미국, 영국, 독일 등 114개국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엔 인권위원회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권으로 인정하고 있고 2년마다 결의안을 채택하고 있다. 결의안은 "모든 사람은, 「세계인권선언」18조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18조에 명시된 사상·양심·종교의 자유에 관한 합법적인 권리행사인 병역거부권을 가지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도록 재검토할 것을 해당 국가들에게 촉구하고 있다. 더욱이 한국 정부도 이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여전히 521명(2004년 2월 15일 현재)에 이르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고, 매년 약 700명의 사람들이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받고 있다. 지난 50여 년 동안 1만 명이 넘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처벌되었다고 한다. 대체복무제 도입을 통해서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를 '상생과 조화의 관계'로 재정립하고자 하는 병역거부자들의 울림이 과연 공명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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