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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주민등록법, 이제는 바꾸자

주민등록 업무 지자체로 이관, 자기 정보통제권 가져야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할 때, 길거리를 거닐다 경품을 준다는 응모에 응할 때, 수표를 사용할 때, 비디오나 책을 대여할 때, 국가에서 주최하는 시험을 치를 때 등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라는 무수한 요구에 맞닥뜨려야 할 때마다 내밀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주민등록번호이다.

1962년 제정 이래로 응당 자연스러운 듯 일상 곳곳에 침투해 온 주민등록법은 감시와 통제의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전면적 개정 요구에 직면해 있다. 18일 지문날인반대연대는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주민등록법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정보화 시대의 주민등록법 현실과 대안'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주민등록법 개정을 촉구했다.


주민등록제도=인권침해제도

개인정보를 국가에 등록하는 것은 행정계획을 수립하고 국민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주민등록제도의 취지는 화석화된 지 오래다. 지문날인반대연대 윤현식 활동가는 "현 주민등록법이 주민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개악되어 왔기 때문에 중앙 집중화된 관리체계의 일원화를 부추겼다"고 진단했다. 주민등록법 제3조는 '주민등록에 관한 사무의 지도, 감독은 행정자치부 장관이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실제 '주민'등록법임에도 그 실질적인 내용은 '국민'등록법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민등록 제도의 본 취지를 살리기 위해 주민등록사무와 관련된 일체의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해야 한다"고 윤 활동가는 주장했다.

과도한 주민정보를 모으는 것도 현 주민등록제도의 문제이다. 주민등록법 상에 따르면 주민이 행정기관에 등록해야 할 개인정보의 항목은 10여 가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주민등록법 시행령의 별지서식의 양식에 의해 수집되는 정보는 100여 가지 항목을 초월한다고 윤 활동가는 지적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을 직접 만나서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경우와 달리 수집된 정보만으로 업무를 처리는 중앙행정기관의 업무 처리가 과도한 개인정보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이에 윤 활동가는 "수집정보는 주민등록법 상의 내용으로 한정지어야 하고, 부득이한 경우 주민의 의사에 따른 조례에 바탕을 두어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수집된 자신의 정보에 대해 스스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문제점도 지적됐다. 윤 활동가는 "현행 주민등록법은 행정기관에 보유된 자신의 정보를 열람하고 이에 대한 정정을 요구하거나 자신의 동의를 받지 아니하였거나 법률의 근거 없이 수집된 자신의 정보에 대해 동의 철회, 삭제, 반환, 폐기를 요청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며 자기정보통제권의 보장을 촉구했다. 이어 "개인 정보를 수집할 시 본인의 참여는 철저히 배제하면서, 개인정보가 누출되었을 때 주민행정업무의 책임자인 행정자치부에 책임이 부과되지 않고 모든 피해는 정보주체인 본인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윤 활동가는 강제적으로 민감한 신체 정보를 채취하는 지문날인제도와 만 17세가 된 모든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신분증을 발급하도록 하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지문날인제도의 철폐와 주민등록번호의 폐지를 주장했다.


주민등록번호 폐기, 새로운 일련번호로 대체 가능

진보네트워크센터 이은우 운영위원도 "고유식별자로 기능하고 있는 주민등록번호를 폐기하고, 개인정보를 담지 하지 않은 새로운 일련번호로의 대체가 충분히 가능하다"며 우선 "주민등록번호 남용 금지 규정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 운영위원은 더 나아가 주민등록번호 체계를 변경하고, 주민등록제도를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선택적인 것으로, 중앙 정부가 아니라 지방에서 관장하는 것으로 바꾸자는 안을 내놓았다.

이날 토론회는 40년이 넘는 시간동안 개개인의 필요는 외면한 채 집단적 감시 체계의 일환으로 기능하고 있는 주민등록제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청사진을 모색한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