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능부정' 무작위 수사로 '영장주의' 위배
경찰이 29일 발표한 대학수학능력 시험 부정 조사과정에서 광범위한 인권침해 가능성이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경찰은 수능시험 당일 SK와 LG텔레콤을 통해 전송된 문자메시지 중 5이하의 숫자로 된 문자 24만 건을 조사해 그 중 부정행위가 의심되는 문자는 5백 50건이라고 밝혔다. KTF 역시 이날 오후 1만 7천 건의 문자를 제출해 '문자 조사'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경찰은 26일 발부받은 압수수색영장으로 이동통신사에게 시험 당시 전송된 문자 중 5이하의 숫자로만 구성된 것을 넘겨받아 조사 중인 것이다.
경찰의 이번 수사 방식은 우선 '영장주의 원칙'을 심각히 위배하고 있다. 범죄 수사 과정에서 강제력을 행사할 때 발생하는 인권침해를 없애기 위해 헌법은 영장주의를 보장하고 있다. 압수수색영장은 이러한 목적에 어긋나지 않도록 '범죄혐의'가 입증되어야만 발급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경찰은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불특정 다수'를 수사대상으로 삼았고 법원은 인권침해 소지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영장을 발급한 셈이다. 이에 대해 이은우 변호사는 "숫자로만 된 문자라도 모두 수능부정 혐의가 있다고 볼 수 없는데도 일단 뒤져서 나오면 수사한다는 방식이 문제"이며 이는 "영장주의의 명백한 후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실제로 경찰은 29일 발표에서 "현 단계에서 의심스러운 문자의 수를 부정행위 가담자의 수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섣부른 예단"이라고 밝혀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작위 수사'를 스스로 입증했다.
경찰의 방식은 마치 우편함을 뒤져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편지를 뜯어보고 그 중 물증이 되는 것을 기초로 역수사해 나가는 방식인 것. 이것이 컴퓨터와 같은 '기계'를 통해 이루어지면 '과학수사'라는 이름으로 둔갑한다. 진보네트워크 오병일 활동가는 이에 대해 "첨단 기술을 동원한 과학수사는 사실상 수사편의주의에 다름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경찰이 내세우고 있는 편리함과 신속함이라는 첨단기술의 동원은 사실 경찰의 편의 위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인권침해 가능성은 그 뒤에 가려지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통신상으로 일상적이며 광범위한 검열과 통제가 가능하게 된 것 또한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일테면 경찰이 공무원 노조 활동을 내사하려고 모든 문자에서 '전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을 '추려내어' 수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끔찍한 예를 든다. 이 경우 '압수수색영장'으로 적법절차를 밟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추려내는' 과정에서 '비밀침해' 등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발생한다. 실제 미연방수사국은 1999년 '카니보어(육식동물)'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해 범죄수사와 예방을 명목 삼아 일반인들의 이메일까지 검열하고 있는데, 그 한 방법이 '특정'단어를 사용한 이메일을 걸러내는 방식이다.
오 활동가는 이번 사건을 '통신상의 불심검문'이라고 말한다. '모든 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등 불심검문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가 고스란히 발생한다는 것.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제의식은 아직 미흡하다고 안타까워하는 그는 "특히 신체정보 유출이나 재산상의 피해를 입지 않으면 프라이버시 혹은 개인정보 침해를 묵인하는 분위기"라며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하고 개인 생활이 열람 당하는 것은 시민의 자율적 활동을 크게 위축시킨다"고 심각성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