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 열려
"수급권자가 될 수 없을까요? 동사무소에서는 소득이 있다고 안된답니다. 고물 팔아서 한 달에 20만원 정도 버는데 방값(쪽방)도 안됩니다. 점심은 고물상에서 때우지만, 하루에 라면 하나 (사서) 끓여먹기도 힘듭니다" 21일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에서 만난 김근호 씨는 자신의 막막한 생계를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17세에 가출해서 지금까지 거리나 쪽방을 자신의 삶의 둥지로 삼아온 김 씨는 노숙인의 전형적인 처지를 보여주었다.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노실사)는 노숙인들 대부분이 13∼14세에 일용직 등 불안정한 노동 시장에 내던져져 거리나 쪽방에서 생계를 유지하다 48세 정도에 짧은 생을 마감한다고 추모제 서두에서 밝혔다. 그들은 올해 하루 1명 꼴로 거리에서 사라졌다.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을 기억하는 추모제는 벌써 4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이들에게 희망은 동지 밤처럼 칠흙같기만 하다. "굶어 죽은 아이 5일 동안 보관하고 있던 한 아저씨, 전기세가 없어서 촛불을 켜고 살아야 하는 할머니, 이것이 생존권 보장을 약속한 나라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냐!"라고 추모사를 시작한 류정순 빈곤문제연구소 소장은 현 정부의 빈곤 대책은 '한마디로 무대책'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노숙자가 작년의 2배를 넘어섰는데도 정부는 아무 일도 안하고 있다. IMF 때처럼 '공공근로 확대', '한시적 생계보호' 등 뭐라도 내놓아야 할 것인데, 정부는 동장군과 싸우고 있는 가난한 이들의 눈물의 닦아주기는커녕 부자와 자영업자들의 세금을 깎아준 것이 고작"이라고 소리쳤다. 노숙인들은 류 소장의 추모사 중간마다 "일자리를 주십시오"라고 절박하게 외치기도 했다.
지난 7월 가출한 문모 씨가 철도 공안에게 폭행을 당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이후, 그의 죽음을 계기로 (노숙인)당사자모임이 만들어졌다. '쓰레기처럼 던져지는' 등 폐지취급을 받고 살았다고 증언하는 당사자모임의 한 활동가는 "주민등록증 복원, 일자리 알선, 직업 훈련"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기자의 소매를 끌며 하소연 한 김 씨 역시 "가장 절실한 건 일자리"라며 공공근로를 알선해 달라고 수차례 호소했다.
추모제는 일년 중 가장 긴 겨울밤인 동지날 서울역 광장에서 1백50여 명의 노숙인들과 시민들이 모여 뼈 속 깊이 스며드는 찬바람을 맞으며 진행되었다. 쪽방 체험, 주민등록말소자 신분복원 상담과 복원비 지원 등 사전행사도 함께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