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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터넷 사용하려면 개인정보 넘겨야"

'계약' 빌미로 동의 '강제'하는 어이없는 계약서

ㄱ씨는 집에서 인터넷을 쓰기 위해 전용선을 설치하기로 마음먹었다. 여러 회사의 제품을 비교·검토한 결과 가장 저렴하다고 판단한 ㄴ회사 제품을 선택했다. 가입신청 후 직원이 장비 설치를 위해 방문했다. 시범운영을 마치는 순간 직원은 '인터넷 가입 계약서'를 내밀더니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평소 사용설명서나 이용계약서를 꼼꼼히 챙겨왔던 ㄱ씨는 계약서를 보는 순간 화들짝 놀랐다. 계약서 하단에는 "성명·주민번호·주소 등 개인의 식별정보를 신용정보업자, 협력사 등에게 제공하여, 본인의 신용을 판단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하거나 요금회수, 마케팅 자료로 이용하는데 동의한다"는 내용을 담은 '동의서'가 버젓이 포함되어 있었다.

ㄱ씨는 당장 인터넷 전용선 설치와 사용을 빌미로 이루어지는 개인정보 수집에 이의를 제기했다. 즉 인터넷 전용선을 설치하기 위해 계악서를 작성하고 이에 서명하는 것과 개인의 신용정보를 '다른 용도로' 신용정보업자가 사용하는 데에 서명하는 것은 별개라는 주장. 그러나 직원은 "전용선 설치를 위해 3년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는 반응이다. 국내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가 400만을 넘은 지 오래됐다. 그 많은 사람 중에 ㄱ씨와 같은 문제제기가 공론화 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 사회가 개인정보 보호에 관해 얼마나 무감한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또한 '계약'을 빌미로 이루어지는 '강제'적인 정보수집이 정보제공자의 '동의'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도 문제이다. 게다가 '동의'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하는 조건 역시 '차별'적이다.

인터넷 전용선 설치를 위해 몇몇 회사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신청서를 내려 받아 확인해 보면 신청서 말미에 깨알같은 글씨로 채워진 조그만 상자를 볼 수 있다. 그 상자 안에는 여지없이 개인의 신용정보를 신용정보업자나 공공기관의 정책자료로 활용하는 데 동의를 요구하는 정보 제공자의 '서명' 란이 포함되어 있다. 인터넷 전용선을 설치하는 대가로 다른 권리를 침해하는 불공정한 거래가 '계약'이라는 미명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치 노예계약처럼, 계약이 성립될 수 없는 조건을 '계약'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