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른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수사·공판기록 공개를 거부해 물의를 빚고 있다.
17일 서울중앙지검은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경찰청 과거사위)의 사건기록 요청에 대해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유죄확정된 사건으로 재심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법적 절차에 따라 재심판을 받도록 되어 있으며 △검찰이 수사한 사건을 경찰이 재조사하겠다는 것으로 제대로된 진실규명 여부가 불투명하며 △경찰이나 검찰의 재조사가 결국 자신이 행한 일을 자신이 평가하는 것이어서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또 검찰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아래 과거사법)이 제정되었으므로 이 법에 따른 '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과거사위)가 구성되어 검찰에 자료를 요청하면 적극적으로 응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지난 3월 경찰청 과거사위는 이 사건을 10대 우선 조사 대상 사건으로 선정하고 이달 8일 검찰에 수사·공판기록 전체의 등사를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검찰의 이런 태도는 진실규명을 회피하려는 의도를 그대로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지난 5월 3일 제정된 과거사법은 진실규명의 범위에서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은 제외"하며 다만 과거사위가 "재심사유에 해당하며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했다. 따라서 재심사유에 해당하는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어 과거사위가 재심사유에 해당한다고 인정하지 않는한 이 사건은 과거사위의 조사대상에도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이번에 검찰이 같은 국가기관인 경찰의 기록공개 요청마저 거부해 사건의 진실이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사건 피해자 강기훈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 진행과 조작을 담당했던 검찰이 과거에 잘못했던 사실을 인정하기는커녕 진상규명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며 "검찰은 과거와 똑같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김종빈 검찰총장은 인사청문회에서 과거사 재조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번 결정은 이를 뒤집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검찰 수사가 정당했다면 기록을 내놓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며 "과거 독재정권에서 획득한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조직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국정원이나 경찰은 나름대로 과거사위를 만들어서 자기 고백과정을 밟아가는데 유독 검찰만 이런 흐름을 거부하고 있다"며 "검찰이야말로 사법개혁의 대상임을 입증하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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