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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국가안보와 젠더

[기획] 평화운동의 새로운 도전 ②

몇 달 전, 필리핀 여성활동가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낙카'라는 탈성매매 여성단체의 사무실이 불도저에 붕괴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불도저와 힘겹게 싸우는 여성들의 모습과 무너지는 건물이 담긴 사진도 함께 있었다. '낙카'는 안젤라스 시에 미공군기지가 주둔했던 시절, 성판매를 했던 필리핀여성들이 미군이 떠난 후, 자신의 생존과 재활을 위해 식당을 운영하며, 서로 함께 돌보는 여성단체이다. 그런데 낙카가 있는 지역이 재개발이 되면서, 결국, 불도저에 밀리는 형국이 되었다. 낙카의 여성들은 법적 소송을 준비하며 계속 투쟁할 것을 알려왔다.

13년 전 미군기지 협정이 만료되어 미군은 철수했으나, 필리핀에는 미군기지가 남긴 흔적들이 여전하다. 오염된 환경, 망가진 여성의 몸, 대물림되는 아이들의 질환과 기형, 잃어버린 자존감과 자립심. 그러나 낙카의 여성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기 위해 서로 의지하며 단체를 꾸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안보를 위해 주둔했던 기지가 남긴 후유증은 여성/사람의 몸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국가안보가 여성/개인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해온 문제이다. 군사력을 기반으로 안보를 보장하려는 국가는 실제적으로는 여성인권을 도외시하거나, 국가안보를 위해서 여성을 희생시켜왔다. 필리핀의 낙카처럼, 미군에게 성적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지촌 여성들은 국가안보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한 섹터인 것처럼 간주되나 진작 그 여성들의 생존권, 건강권, 노동권은 한국사회에서도 방치되고 있다. 아메라시안들도 민족국가 틀 내에서 비가시적으로 존재하며, 온전한 시민권을 갖고 있지 못하다.

진정한 안보가 무엇인가, 여성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되물으며, 이를 위해 활동하는 여성들은 일상의 삶 속에서 국가안보를 문제시하기 시작했다.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국가안보를 본다는 것은 정치, 경제, 군사의 영역 내에서 논의된 안보를 일상의 영역에서 보자는 것이다. 나는 정말 안전한가? 거리에서, 집에서, 직장에서, 해변에서 나는 어떠한 위험/두려움/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이러한 물음들은 군사적 폭력이 특정한 전투지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 전쟁을 찬양하는 가치와 이념은 일상적인 삶에 그물처럼 퍼져있다는 인식에서 시작한다.

광화문 네거리를 걸어보자. 우뚝 선 이순신 동상의 건재함은 드라마 해신에서 다시 태어나고, 광화문과 비원을 지키는 수문장들의 문화공연은 군사안보의 힘을 가시한다. 그 많고 많은 전통적인 문화 공연 중에서 왜 하필이면 굳은 표정으로 부동자세한, 창을 든 포졸과 포도대장의 재현인가? 멋스러운 군무도 있고, 해학적인 탈춤도 있다. 다양한 전통적 의상을 입고 노닐며 함께 웃고 떠드는 모습을 연출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화적 재현은 단순한 하나의 문화가 아니라, 한국사회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보여준다.

일상을 보자는 것은 상품, 문화, 일상적 관계에 군사적 가치가 스며있지는 않는지, 군사적 폭력/유사군사적 폭력을 내포하는 것은 아닌지 비판적으로 읽는 작업이다.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것을 뒤집어보고 거스르면서 실은 이것이 얼마나 정치적 행위인가를 밝혀내는 작업이다. 안보가 국가중심성에서 출발하여, 절대적 가치를 가지는 한국사회에서, 국가안보담론은 사람들의 일정한 사유방식과 행위를 유도한다. 현충일, 6.25기념일, 전쟁기념관 등 반복되는 의례와 기념일을 통하여 "나"는 "우리"가 되고 민족국가 틀 내에서 선택된 집단적 기억은 나의 역사가 된다. 그래서 국가안보는 단순히 강제되거나 주입된 외부적 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구성하는 하나의 방식을 제공한다.

이렇게 일상에서 안보를 묻는 작업은 안보가 얼마나 젠더화 되어있는가 하는 질문과 연결된다. 국가안보 논의에 과연 여성은 어디에 있는가? 남성이 된다는 것, 여성이 된다는 정체성이 국가안보와 무슨 상관인가? 전통적으로 안보, 전쟁 문제는 남성의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국가안보문제를 본다는 것은 안보이야기에 여성을 가시화하는 일이다. 남녀의 관계성과 위치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안보가 여성과 아이/시민을 보호하는 좋은 남성과 언제 공격할지도 모를 나쁜 남성/적을 상정하는 한, 안보는 보호-피보호라는 구도를 가진다. 이러한 구도에서 보호자의 역할은 남성의 몫이며, 남성이 된다는 것은 보호자의 역할을 실행하는 것이다. 가정을 지킨다는 것은 국가를 지킨다는 것과 같은 선상에 있다. '군대에 가야 남자가 된다'는 이야기는 남성이라는 정체성/역할이 안보와 긴밀히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병역의무는 남성들에게 "대한민국"의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구성하고, 집단적 남성연대감을 형성하게 한다. 그런데 민족국가적 남성의 정체성이 "보호"의식과 만나면, 보호해야할 여성/민족을 둘러싸고 다른 국가에 대한 배타성이 강화된다. 사실, 남성은 연령, 계급, 학력, 인종, 섹슈얼리티 등에 따라 다양한 차이가 있지만, 안보와 병역의무는 남성들간의 차이를 무화시키며 군대에 간 사람과 가지 않은 사람으로 이원화한다.

안보는 그 성격상 가부장적 질서를 토대로 한다. 안보담론은 성을 차별화하는 구조를 기반으로 구성된다. 정복, 승리, 강함이 남성/남성성과 동일시되고, 패배, 약함이 여성/여성성으로 가치 폄하되는 이원화된 체계를 생성한다. 한 남성을 만들기 위해, 군인을 만들기 위해 여성들의 보이지 않는 정서적 지원과 노동이 요구된다. 그래서 안보는 고정된 성정체성과 불평등한 남녀관계성을 재생산하고 유지한다.

그래서 여성들은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찾아간다. 티셔츠에서, 거리의 간판에서, 우리의 관계에서 군사주의적 폭력성을 비판한다. 기존의 군사안보에 반하는 평화문화 만들기를 위해 우선, 운동 조직의 민주적이고, 상호적이며 평등한 의사소통 구조를 만든다. 오염되지 않는 언어와 담론을 만들기 위해 수다를 떤다. 트라이던트 핵잠수함 기지에 들어가 도끼와 망치로 통제실을 망가트린 세 명의 영국 여인처럼, 헐어버릴 폭력(성)을 찾아간다. 오염된 땅을 정화하기 위한 푸에리토리코의 비에케스 여성들, 오키나와의 여성들, 자신의 생존권을 만들기 위한 필리핀의 낙카 여성들, 한국의 기지촌 여성들의 긴 투쟁은 계속된다.
덧붙임

엘리 님은 한국여성평화네트워크(SAFE), 평화를만드는여성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