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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황필규의 인권이야기] '마지막 남은 관계'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을 위하여

취약성, 현안성, 운동성 그리고 감수성에 대하여

올해 하반기에는 노인학대에 관심을 가져보기로 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지방의 한 노인학대예방센터가 본인이 몸담고 있는 '공감'에서 진행하는 공익단체 변호사 지원 사업에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동안 노인학대문제에 대하여 제대로 심각하게 고민해 본 바도 없었고 사실은 본인이 주로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하는 이주노동자, 난민, 다국적기업 관련 인권문제의 연장선에서 재외동포문제를 다루고자하는 계획을 가지고 관련단체를 접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왜 노인학대인가를 자문해본다.

모든 인권문제의 핵심은 어느 개인이나 집단이 처해있는 상황의 취약성(vulnerability)이다. 그런 점에서 노인은 거의 모든 취약성에 노출되어 있다. 노인은 신체적 나약함, 그리고 종종 재정적 어려움이나 정신적 질환 등으로 가정에 존재하건 시설에 존재하건 그 가족구성원이나 시설종사자의 처분에 거의 전적으로 맡겨져 있다. 더욱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의존도는 점점 심화되고 보호하거나 부양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점점 취급이 곤란하고 귀찮은 존재가 되기 쉽다. 노인공경의식의 강조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고 노인학대라는 인권침해와 폭력성의 가능성에 잠재적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매우 쉽게 이끌린다. 많은 노인이 학대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은 다음의 일부 연구조사의 결과가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준다.

"조사결과 일반인들은 '노인을 발로 차거나 주먹으로 때린다'(98.3%), '노인에게 욕설을 하거나 고함을 지른다(90.1%)와 같은 신체적 학대에 대한 인지도는 높았다. 그러나 '노인의 친구나 친척 등이 방문하는 것을 싫어한다'(29.2%),' 노인이 가족을 타이르거나 의견을 말하면 간섭한다고 불평하거나 화를 낸다'(36.2%) 등과 같은 정서적 학대에 대한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노인들의 학대 빈도를 살펴보면 전체 응답자 1,349명 중 510명(37.8%)이 1회 이상의 학대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속적인 피학 경험이 있는 172명의 노인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조사를 실시한 결과, 여성노인은 정서적·언어적·신체적 학대를, 남성노인은 방임·경제적 학대를 더 받고 있으며, 도시 노인들이 농촌 노인들보다, 지병이 있는 경우가 없는 경우보다, 학대 경험이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지역사회에서의 노인학대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2002)

"종사 직원들의 조사결과, '시설입소나 전원(시설을 옮기는 일) 결정과정에서 노인의 참여없이 이루어지는 행위'를 '강한 인권침해'로 인식하는 경우가 12.5%에 불과했다. 반면 '입소시 시설생활에서 필요한 사항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74.8%), '원하지 않는 노인에게 청소나 빨래 등 어려운 일을 시키며'(85.9%), '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방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83.6%) 등에 대해서 '약한 인권침해'라고 답했다. 또한 시설거주 노인의 사례조사 결과, 시설 내에서의 직접적인 구타나 노동력 착취 같은 문제들도 있었으나 사생활 침해, 식사 공간 미확보, 식사서비스 미흡, 주거의 질 저하, 충분한 의료서비스 부족 등이 인권침해의 중요 내용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노인요양시설에서의 인권침해 발생원인에 대해 종사자들의 47.8%가 거주노인 개인의 성격이라고 응답했고, 정부의 지원부족(10.4%), 직원의 과도한 업무부담(6.3%) 등의 답도 있었다." (무료 및 실비 노인요양시설에서의 인권실태 사례조사, 국가인권위원회, 2002)

인권보호의 관점에서 노인이 지니는 취약성에 대한 인식의 결여는 비단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미국 헌법상의 평등보호조항의 해석기준인 합리성 심사기준과 강화된 심사기준 중 합리성 기준만이 나이 차별에 대하여 적용된다고 한다. 노인은 인종에 기초하여 차별을 받아온 이들과는 달리 의도된 불평등 취급의 역사를 경험하지 않았고, 그들의 능력으로부터 실제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고정관념상 특징에 기초한 독특한 무능력의 대상이 되어 온 것도 아니며, 정치적 과정에서 특별한 보호를 요하는 분리되고 고립된 집단을 구성하지 않고, 우리가 통상적인 수명을 산다면 이르게 될 단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Massachusetts Board of Retirement v. Murgia, 427 U.S. 313-314 (1976))

그러나 합리성 기준이 적용되는 나이, 장애, 부,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도 비록 역사적 과정에서 문제되거나 현출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차별의 역사와 고정된 편견이 강화된 기준이 적용되는 인종 차별에 비추어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역사성의 기준은 모호하다. 또한 현재의 침해를 논함에 있어서 과거의 차별이나 축적되어 온 고정관념은 현재의 차별의 징표나 미래의 차별에 대한 개연성의 표지일 수는 있지만 현재 침해의 심각성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문제는 현재의 차별가능성이며 이는 현재의 시점에서 어떠한 특징이나 집단이 차별에 가장 잘 노출될 수 있는지, 즉 그 취약성이 우선적인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노인'은 '우리가 통상적인 수명을 산다면 이르게 될 단계에 불과하다'는 명제가 지니는 함정을 보면서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본인이 주로 활동하는 영역인 이주와 난민 관련 분야의 경우, 미등록이주노동자의 단속, 보호, 강제퇴거와 관련된 인권침해사례가 거의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언론에 등장하고 있고, 고용허가제 도입 1년째를 맞아 온갖 부작용과 한계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몇몇 난민인정불허결정 등을 통해 국내난민인정제도의 총체적인 부실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 문제는 '현안'이며 크고 작은 '운동'단체들이 함께하고 있으며 본인은 한 쪽 구석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노인학대문제는 현안도 아니며 그 피해자들이 주체로 나서거나 조직화되기 힘들다는 점 등으로 인하여 운동으로 승화되기도 힘들고 실제로 관여하는 '운동'단체가 거의 없다. 현안성과 운동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가질 수 없다는 것,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취약성에 다름 아니지 않을까. 노인학대 문제는 '현안'과 '운동'만을 쫓고 있는 본인 스스로에 대한 의미 있는 반항과 반성의 계기를 제공한다.

정책을 생산할 의사와 능력도 없는 정책담당(?)자, 인권감수성을 가질 의사와 능력도 없는 인권담당(?)자는 논외로 하더라도, "문제는 정책이다", "문제는 인권감수성이다"라고 깨달은 듯이 말하고 이를 강조하면서도 거기에서 그쳐버리는 경우를 많이 본다. 본인도 예외는 아니다. 노인학대 피해자 인권의 법적 보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가정폭력의 일부로 다루어져왔고 현재는 지난해 노인복지법 개정으로 노인학대 부분을 특화하여 이를 별도로 취급하고 있는데 양 법의 목적조항을 보면 각각 '건전한 가정의 육성', '노인의 보건복지증진'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동학대·여성학대와 마찬가지로 혹은 그보다 더 심각하게 노인학대에서 문제되는 것은 '가정'이라는 공간이 가질 수 있는 침해의 용이성과 구제의 곤란성이라는 취약성이다. 따라서 '가정'이라는 공간이 가질 수 있는 취약성 혹은 폭력성의 극복은 '건전한 가정'과 등치될 수 없으며 일반적인 '노인의 보건복지'의 문제로 치환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정책입안자나 그 집행자, 그리고 인권보호활동을 하는 이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인권감수성이다. 그러나 위 법의 목적조항은 그 출발점부터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규정한 목적조차도 잘못되어 있는 법제도는 비록 그 안에 인권보호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취약성의 극복이 아닌 취약성을 부지불식간에 인정하면서 일부 개선을 꾀하는 그릇된 방향과 내용을 강요하게 될 수 있다. 노인학대를 범죄로 규정할 수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가정 내의 문제'라는 주장에 무력해지기 쉽고, 노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보조할 수 있는 성년후견제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게 된다.

노인학대의 피해자들에게는 출구가 없다. 노인학대란 그것이 가족구성원이건 시설종사자이건 그가 믿었고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로부터 버림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화되지 않은 혹은 조직화될 수 없는 이들의 목소리에 차분히 귀 기울이고 이들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법제의 마련을 적극적으로 사고할 여유가 본인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임

황필규 님은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