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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노동자 감시는 기업의 범죄행위"

'회사의 감시, 차별로 인한 건강권 침해사례 보고대회' 열려

노조탄압으로 인한 정신질환에 대해 산재승인을 요구하며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하이텍공대위가 13일 '회사의 감시와 차별로 인한 건강권 침해사례 보고대회'를 열었다.

13일 열린 보고대회 [출처] 하이텍공대위

▲ 13일 열린 보고대회 [출처] 하이텍공대위



사업장 89.9% 노동자 감시

이미 사측의 감시·차별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산재승인을 받은 바 있는 청구성심병원 노조를 비롯해 업종과 지역에 상관없이 회사의 감시·차별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보고대회에서 발표된 청구성심병원 사례에 따르면 사측은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하고 부서내 비조합원 직원들에게 시간대별로 조합원들의 행적을 일일이 기록해 관리자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또 진료지원부장이 조합원이 근무하는 병동이나 물리치료실에 설치된 커튼 뒤에 숨어서 감시하기까지 해 조합원들은 불안해하고 눈물이 많아지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증상을 호소했다. 결국 2003년 근로복지공단은 우울·불안 반응을 수반한 적응장애가 발생했다며 조합원 8명이 제출한 요양신청에 대해 전원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바 있다.

2003년 '노동자감시 근절을 위한 연대모임'이 (주)한길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업종·지역·규모를 고려해 추출한 조사대상 207개 사업장 가운데 89.9%가 한가지 이상의 방법으로 노동자를 감시하고 있었고 전체 사업장에 평균 2.5가지의 감시장비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노동자 건강 위협하는 감시장치

보고대회에서 제시된 미국 '국립여성노동자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작업 중 항상적인 감시와 자동화 장치에 의한 통제를 받는다고 응답한 노동자 가운데 49%가 자신의 업무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응답했다. 또 두통·피로·분노·우울·불안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비율도 감시받는 노동자들에게서 더 높았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은 보고대회에 참석해 "감시를 받는 노동자들은 불안정하게 되고, 주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며, 통제 받는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어 심리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러한 스트레스의 축적이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분석했다.


하이텍 사측의 노골적인 조합원 감시·통제

하이텍의 경우 사측은 조합원이 있는 생산라인을 감시할 수 있도록 작업장에 CCTV를 설치했다가 노동조합의 반발로 철거했다. 하지만 식당 등 조합원들을 감시할 수 있는 작업장 밖에는 여전히 CCTV가 설치되어 있다. 또 조합 사무실 바로 앞에도 한 대가 설치되어 있어 사무실에 누가 출입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사측은 경비 목적으로 설치했다고 하나 정작 감시가 필요한 자재과 근처에는 설치하지 않았다.

한 하이텍 조합원은 "회사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긴장을 하기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고 스트레스가 심하다"며 "밖에 나가서도 건물에 들어서면 항상 CCTV가 없나 천장을 바라보는 습관까지 생겨 거의 강박증 증세"라고 말했다.

CCTV뿐만 아니라 관리자가 노골적인 감시·통제에 나서기도 했다. 증언에 따르면 계장이 직접 생산라인을 하루 한번 이상 관리감독하고, 2시간 일하고 10분 휴식하는데 과장·반장이 돌아가면서 노조원들의 생산라인만 40분, 50분씩 감시한다. 일을 하다가 잠시라도 쉬고 있으면 과장이 바로 도끼눈을 쳐다보며 "뭐하냐"고 물어오고 화장실에 가면 다녀올 때까지 지켜보며 돌아온 것을 확인한다. 잠시 거울을 보거나 휴대폰을 받거나 걸어도 어떻게 알았는지 달려와서 고함을 지르고 난리를 친다. 특히 조합원의 라인에 감시가 심하다.


노동자 감시시스템, 즉각 철거해야

이 정책국장은 CCTV를 비롯한 여러 감시 시스템은 노동자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뿐 아니라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저해하며 궁극적으로는 노동자 스스로 자본의 통제를 내면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빠른 정보화 기술 발전 속도가 고도화된 노동자 감시 기법의 발달과 확산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보고대회에 참석한 이황현아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작업장에 설치된 감시시스템은 그 자체만으로도 노동자간의 자율적인 교류를 차단하고 위축시켜 대 자본과의 관계 속에서 노동자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집단활동과 자발적인 저항을 무력화시킨다"며 "노동행위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일상생활과 개인적인 사생활까지 침범하여 그 머릿속까지 뒤져보고 측정하여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인격조차 통제하려는 자본의 시도는 결국 노동자 스스로 자본의 시각을 내면화하는 자율적 통제시스템이 구축될 때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또 "작업장 감시통제를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범주로만 제한하지 말고 노동통제, 노동권침해 관점에서 대응해나가야 한다"며 "현장에서 노동자감시시스템으로 악용되고 있는 보안관리시스템은 즉각 철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의 노동자 감시, 형사처벌 근거 필요하다

이 정책국장은 첨단 기술을 이용한 노동자 감시를 막기 위해 "현장에서 더 많은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하고,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에 이와 관련된 규제를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노동조합이 포괄하지 못하는 더 많은 노동자들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자의 개인 정보를 관리자가 임의로 취득하지 못하도록 하는 포괄적인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법이 필요하고, 개인에 대하여 폭력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는 회사의 감시와 차별에 대해서는 노사관계법 틀 내에서 뿐 아니라, 이를 기업의 범죄 행위로 보아 형사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15일 현재 하이텍공대위의 공단 앞 노숙농성은 99일, 무기한 단식농성은 30일째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