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인간안보'(human security)라는 말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국가안보'라는 말만 들어왔고, 국가안보에 다른 소중한 가치들을 무릎 꿇리고 도둑맞아왔던지라 많은 사람들이 '인간안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미 넘쳐나는 '말잔치'에 또 하나의 단어를 추가하는 것이라는 반응도 있고, 빈곤 등의 중요한 문제들을 '안보'라는 개념으로 다룬다는데 반감이 있기도 하다. 위협으로부터의 안전을 말하는데 그 위협이란 게 정당한 위협인지 아닌지가 모호한 것은 국가안보주의가 갖고 있던 문제와 마찬가지라는 지적도 있다. 가장 많은 비판은 '인간안보'의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에 인간생활에 '위협'이라 인식되는 요소가 자의적으로 선택될 수 있고, 그런 모호성과 자의성 때문에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는데 별 도움 될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안보의 개념을 지지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이견은 있다. 그 의미를 좁게 또는 넓게 정하자는 주장간의 대립이다. 좁게 정하자는 것은 인간사에 있을 수 있는 문제란 문제를 다 포괄하다 보면 그 개념이 모호해지고 그 문제의 취사선택이 자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폭력'같은 것에만 개념을 한정하자는 것이다. 반면에 '안전'이란 폭력의 위협으로부터의 안전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빈곤, 질병, 환경 재해 같은 문제들이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 넓게 정하자는 주장이다. 어느 쪽이건 '안전'의 개념이 국가에 대한 위협, 영토에 대한 위협, 군사적 차원의 안보 개념을 넘어서야 한다고 본다.
인간안보라는 단어는 더 일찍부터 사용됐다고 하나, 그 개념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94년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발전보고서'를 통해서이다. 이 보고서가 정의하고 있는 인간안보의 개념은 앞에서 말한 '넓은' 정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정의된 인간안보는 소위 '공포로부터의 자유'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둘 다를 포괄하는 것이고 둘 간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보고서는 인간안보의 본질로서 '보편성, 상호의존성, 사후개입이 아닌 사전 예방, 인민 중심'을 들고 있다. 또한 인간안보에 대한 위협을 '경제적 안전, 식량안전, 건강 안전, 환경 안전, 개인의 안전, 지역사회의 안전, 정치적 안전'이라는 7가지 범주로 분류하고 있다.
여기서 나타나듯 인간안보의 핵심은 안보의 '중심'을 국가로부터 '인민'으로 옮겨서 생각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안보의 관념은 냉전에 의해 크게 형성됐고, 주로 외부의 위협에 대처하는 국가의 능력에 관한 것이었다. 국가는 그 시민을 보호할 권리와 수단을 독점했다. 그러나 국가안보에 대한 이해와 위협의 유형은 확장되고 변화됐다. 국경, 국민, 특정 체제의 가치와 제도를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환경오염, 광대한 인구 이동, 에이즈와 같은 전염성 질병 같은 요소들을 인식하게 됐다. 너무나 많은 위험들이 아주 빨리 오늘날의 상호연관된 세계로 퍼진다. 이에 국제사회도 새로운 안보의 틀을 요구하게 됐다. 국가는 여전히 안보의 기본적인 조달자이자만 때때로 그 안보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오히려 자국민에 대한 위협의 원천이 된다. 이런 이유로 국가 중심의 안보로부터 인민 중심의 인간안보로의 변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자기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개인과 집단, 인민의 역할을 중시하게 됐다는 점이다.
인간안보의 주요한 관심은 국가보다는 개인과 집단이다. 인간안보에 대한 위협요소는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됐던 것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행위자의 범주가 국가만이 아니라 그보다 확대된다. 인간안보를 성취하는 것은 인민을 보호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을 지켜낼 인민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다. 인민의 권한 강화에는 표현의 자유 등 기본적인 인권의 강화가 당연히 포함된다.
이처럼 인권과 인간안보는 그 동기나 관심 영역에서나 긴밀히 연결돼 있다. 또한 둘다 빈곤과 폭력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공포로부터의 자유'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는 인권과 인간안보 둘 다의 공통된 목표이다. 국제인권의 초기 역사에서 냉전으로 인해 자유권과 사회권은 인위적으로 분리됐다. 그것에 저항하여 인권운동은 모든 인권의 상호의존성과 불가분성을 강조해왔다. 그리고 파편화된 인권이 총체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 구조와 질서를 모색하면서 평화권, 환경권, 발전권이 속속 등장했다. 인간안보의 출현은 이러한 인권의 총체성과 불가분성을 배경으로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인간안보의 개념을 지지하건 안 하건 간에 또는 수용하건 안 하건 간에, 지배계급 혹은 권력을 쥐고 있는 정부의 보안과 인간안보, 이 두 가지를 혼동해서는 결코 안 된다. 인간안보란 빈곤과 절망으로 극단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없어야 하고, 이로 인해 공포와 강압적 안전을 거래하는 일이 없는 사회를 설계하는 것이다. 공포 때문에 정상적 인간 활동을 줄인다거나 공포 때문에 모든 사람을 감시한다거나 공포 때문에 총과 무기에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불행히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후자이다. '안보'란 그런 속임수를 쓸 여지가 다분한 개념이기에 조심, 또 조심하고 경계하고 또 경계할 일이다.
거짓말쟁이 소년의 이야기를 어른들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교훈으로 사용한다. 이를 '거짓말에 속지 말라'는 얘기로 바꿔보자. 두 번이나 속은 마을 사람들은 늑대에 대한 경보를 신뢰할 수 있는 장치의 마련을 왜 하지 않았을까. 양떼와 소년의 목숨을 잃은 것은 거짓말쟁이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모두의 피해이지 않은가. 더구나 잃은 것은 귀중한 생명이요, 신뢰와 같은 사회의 버팀목이 되는 가치이다. 안보, 대테러를 명분으로 한 가짜 경보에 대피하면서 기본적 인권을 팽개치고 뛰어가 버리면 정작 안전을 위협하는 진짜 경보를 듣지 못할 수 있다.
1994 인간발전보고서-새로운 차원의 인간안보(일부 발췌)
50년 전,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핵 에너지의 발견에 대해 "모든 것이 변했다."고 간결하게 요약했다. 아인슈타인은 계속해서 예견했다.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아주 새로운 사고방식이 요구된다." 핵폭발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철저히 파괴했지만, 인류는 세계적인 핵참화를 방지하려는 최초의 결정적인 시험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50년이 지났고, 우리에게는 핵안보로부터 인간안보라는 새로운 사고의 심오한 전환이 요구된다.
안보 개념은 아주 오랫동안 협소하게 해석돼왔다: 외부의 침입으로부터의 영토의 안보로서, 또는 외교 정책에서 국익의 보호로서, 또는 핵 학살의 위협으로부터의 지구적 안보로서. 안보 개념은 인민 보다는 국민국가들에 보다 결부됐다. 열강은 전 세계적 냉전을 치르면서 이념투쟁에 사로잡혔다. 개발도상국들은 최근에야 독립을 얻었고 자신들의 약한 국가 정체성에 대한 진정한 또는 인지된 위협에 대해 민감했다. 일상생활에서 안전을 추구하는 보통 사람들의 정당한 관심사는 잊혀졌다. 이들 많은 사람들에게 안전은 질병, 굶주림, 실업, 범죄, 사회갈등, 정치적 억압, 환경적 위험의 위협으로부터의 보호로 상징됐다. 물러간 냉전의 어두운 그림자와 더불어 이제 우리는 국가간이 아닌 국가 내부의 많은 분쟁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안감은 격변하는 세계적 사건에 대한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일상생활에 대한 걱정으로 인한 것이 더 많다. 자신과 가족들이 충분히 먹을 수 있을까? 직업을 잃지 않을까? 거리와 이웃들이 범죄로부터 안전할까? 억압적인 정부에게 고문을 당하지 않을까? 성별 때문에 폭력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까? 종교적 또는 인종적 출신 때문에 박해의 표적이 되지는 않을까?
최종분석하면, 인간 안보란 아이가 죽지 않는 것, 질병이 퍼지지 않는 것, 일자리가 삭감되지 않는 것, 인종(민족) 긴장이 폭력적으로 격발되지 않는 것, 반대자가 침묵당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안보는 무기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존엄성에 대한 관심이다.
간단하지만, 인간안보의 사상은 21세기의 사회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인간안보의 기본 개념을 고려할 때 4가지 본질적 특징에 초점을 둬야 한다.
□ 인간안보는 보편적 관심사다.
인간안보는 부유한 나라이거나 가난하거나 모든 곳의 사람들과 관련된다.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많은 위협들이 있다. 예를 들어 실업, 마약, 범죄, 오염, 인권침해이다. 문제의 강도는 지역마다 다를 수 있으나 인간안보에 대한 이 모든 위협들은 현실이며 증가하고 있다.
□ 인간안보의 구성요소는 상호의존한다.
세계 어디서건 인민의 안전이 위험에 빠지면 모든 국가들이 연루될 수 있다. 기아, 질병, 오염, 마약 거래, 테러리즘, 민족 분쟁, 사회적 해체는 더 이상 고립된 사건이 아니며 국경 내부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 영향은 전 지구를 휩쓴다.
□ 인간안보는 사후 개입이 아닌 사전 예방을 통해 보장하는 것이 더 쉽다.
이들 위협에 대해 막바지보다는 시작단계에서 대처하는 것이 대가를 덜 치른다. 예를 들어 HIV/AIDS의 직간접 비용은 1980년대에 대략 2천4백억 달러였다. 수십 억 달러라도 기초 건강 보호와 가족계획 교육에 투자됐다면 이 치명적인 질병의 확산을 막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 인간안보는 인민 중심적이다.
인간안보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 얼마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느냐, 시장과 사회적 기회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느냐, 분쟁 속에 사느냐 평화롭게 사느냐에 관심을 갖는다.
몇몇 분석가들은 인간안보를 엄격하게 정의하려고 했다. 하지만 '인간의 자유'와 같은 여타의 근본적인 개념들처럼, 인간안보는 그것의 실재보다는 부재를 통해 더 쉽게 규명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안전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명백한 정의가 있는 것이 유익할 수 있다. 인간안보는 두개의 주요한 측면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인간안보는 기아, 질병, 억압 등의 만성적 위협으로부터의 안전이다. 둘째, 인간안보는 일상생활의 유형-집이건, 직장이건, 지역사회이건- 속에서 갑작스럽고 해로운 붕괴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한다. 이러한 위협은 모든 수준의 국민 소득과 발전 수준에서 있을 수 있다.
인간안보의 상실은 느리고 조용한 과정일 수도 있고 갑작스럽고 소란한 긴급상황일 수도 있다. 잘못된 정책 선택으로 인한 인재일 수도 있고 자연의 힘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또는 환경 파괴가 자연 재해를 초래하고 인간 비극이 뒤따르는 경우에서처럼 두개의 합성일 수도 있다.
안전을 정의하는데 있어서 인간안보가 인간발전과 동등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인간발전은 보다 광의의 개념이다. 인간발전은 이전 인간발전보고서에서 인민의 선택의 범주를 확장하는 과정으로서 정의됐다. 인간안보는 인민이 이러한 선택을 안전하고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오늘 갖고 있는 기회가 내일 전적으로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안보와 인간발전은 연관된다: 한 쪽에서의 진보가 다른 쪽의 진보의 기회를 강화한다. 하지만 한쪽에서의 실패는 다른 쪽의 실패의 위험을 또한 증가시키며 역사는 그 사례들로 가득차 있다.
실패한 또는 제한된 인간발전은 인간박탈-빈곤, 굶주림, 질병, 인종(민족) 집단 또는 지역간의 지속적인 불균형-을 초래한다. 권력과 경제적 기회에 대한 접근에서 이러한 것들이 적체되면 폭력을 초래할 수 있다.
안보 개념은 아주 오랫동안 협소하게 해석돼왔다: 외부의 침입으로부터의 영토의 안보로서, 또는 외교 정책에서 국익의 보호로서, 또는 핵 학살의 위협으로부터의 지구적 안보로서. 안보 개념은 인민 보다는 국민국가들에 보다 결부됐다. 열강은 전 세계적 냉전을 치르면서 이념투쟁에 사로잡혔다. 개발도상국들은 최근에야 독립을 얻었고 자신들의 약한 국가 정체성에 대한 진정한 또는 인지된 위협에 대해 민감했다. 일상생활에서 안전을 추구하는 보통 사람들의 정당한 관심사는 잊혀졌다. 이들 많은 사람들에게 안전은 질병, 굶주림, 실업, 범죄, 사회갈등, 정치적 억압, 환경적 위험의 위협으로부터의 보호로 상징됐다. 물러간 냉전의 어두운 그림자와 더불어 이제 우리는 국가간이 아닌 국가 내부의 많은 분쟁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안감은 격변하는 세계적 사건에 대한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일상생활에 대한 걱정으로 인한 것이 더 많다. 자신과 가족들이 충분히 먹을 수 있을까? 직업을 잃지 않을까? 거리와 이웃들이 범죄로부터 안전할까? 억압적인 정부에게 고문을 당하지 않을까? 성별 때문에 폭력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까? 종교적 또는 인종적 출신 때문에 박해의 표적이 되지는 않을까?
최종분석하면, 인간 안보란 아이가 죽지 않는 것, 질병이 퍼지지 않는 것, 일자리가 삭감되지 않는 것, 인종(민족) 긴장이 폭력적으로 격발되지 않는 것, 반대자가 침묵당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안보는 무기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존엄성에 대한 관심이다.
간단하지만, 인간안보의 사상은 21세기의 사회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인간안보의 기본 개념을 고려할 때 4가지 본질적 특징에 초점을 둬야 한다.
□ 인간안보는 보편적 관심사다.
인간안보는 부유한 나라이거나 가난하거나 모든 곳의 사람들과 관련된다.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많은 위협들이 있다. 예를 들어 실업, 마약, 범죄, 오염, 인권침해이다. 문제의 강도는 지역마다 다를 수 있으나 인간안보에 대한 이 모든 위협들은 현실이며 증가하고 있다.
□ 인간안보의 구성요소는 상호의존한다.
세계 어디서건 인민의 안전이 위험에 빠지면 모든 국가들이 연루될 수 있다. 기아, 질병, 오염, 마약 거래, 테러리즘, 민족 분쟁, 사회적 해체는 더 이상 고립된 사건이 아니며 국경 내부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 영향은 전 지구를 휩쓴다.
□ 인간안보는 사후 개입이 아닌 사전 예방을 통해 보장하는 것이 더 쉽다.
이들 위협에 대해 막바지보다는 시작단계에서 대처하는 것이 대가를 덜 치른다. 예를 들어 HIV/AIDS의 직간접 비용은 1980년대에 대략 2천4백억 달러였다. 수십 억 달러라도 기초 건강 보호와 가족계획 교육에 투자됐다면 이 치명적인 질병의 확산을 막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 인간안보는 인민 중심적이다.
인간안보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 얼마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느냐, 시장과 사회적 기회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느냐, 분쟁 속에 사느냐 평화롭게 사느냐에 관심을 갖는다.
몇몇 분석가들은 인간안보를 엄격하게 정의하려고 했다. 하지만 '인간의 자유'와 같은 여타의 근본적인 개념들처럼, 인간안보는 그것의 실재보다는 부재를 통해 더 쉽게 규명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안전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명백한 정의가 있는 것이 유익할 수 있다. 인간안보는 두개의 주요한 측면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인간안보는 기아, 질병, 억압 등의 만성적 위협으로부터의 안전이다. 둘째, 인간안보는 일상생활의 유형-집이건, 직장이건, 지역사회이건- 속에서 갑작스럽고 해로운 붕괴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한다. 이러한 위협은 모든 수준의 국민 소득과 발전 수준에서 있을 수 있다.
인간안보의 상실은 느리고 조용한 과정일 수도 있고 갑작스럽고 소란한 긴급상황일 수도 있다. 잘못된 정책 선택으로 인한 인재일 수도 있고 자연의 힘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또는 환경 파괴가 자연 재해를 초래하고 인간 비극이 뒤따르는 경우에서처럼 두개의 합성일 수도 있다.
안전을 정의하는데 있어서 인간안보가 인간발전과 동등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인간발전은 보다 광의의 개념이다. 인간발전은 이전 인간발전보고서에서 인민의 선택의 범주를 확장하는 과정으로서 정의됐다. 인간안보는 인민이 이러한 선택을 안전하고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오늘 갖고 있는 기회가 내일 전적으로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안보와 인간발전은 연관된다: 한 쪽에서의 진보가 다른 쪽의 진보의 기회를 강화한다. 하지만 한쪽에서의 실패는 다른 쪽의 실패의 위험을 또한 증가시키며 역사는 그 사례들로 가득차 있다.
실패한 또는 제한된 인간발전은 인간박탈-빈곤, 굶주림, 질병, 인종(민족) 집단 또는 지역간의 지속적인 불균형-을 초래한다. 권력과 경제적 기회에 대한 접근에서 이러한 것들이 적체되면 폭력을 초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