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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없는 '인권경찰'의 한판 이벤트"

'인권경찰 비전선포식'에 인권활동가들 항의

인권경찰로 거듭나겠다고 나선 경찰에 대해 인권활동가들이 항의 기자회견과 침묵시위로 경고장을 보냈다.

경찰청이 주최한 '인권경찰 비전선포식'

▲ 경찰청이 주최한 '인권경찰 비전선포식'



4일 경찰청(청장 허준영)은 남영동 옛 보안분실에서 '인권경찰 비전선포식'을 열고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을 발표했다. 이날 허 청장의 연설이 시작되자 '인권없는 인권경찰'이라고 쓰여진 옷을 입은 인권활동가 6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침묵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마스크를 쓰고 '레드카드'를 든 채 시위를 벌이다 허 청장의 연설이 끝나자 항의의 뜻으로 식장에서 퇴장했다.

이에 앞서 인권단체연석회의(아래 인권회의)는 행사장 밖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 스스로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인권경찰에서 인권친화적인 경찰로 다가 가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환영한다"면서도 "가진 자들과 권력 앞에서는 스스로 한없이 작아지기만 하는 경찰, 그들 앞에서는 한번도 제대로 된 수사를 해본 적이 없는 경찰이 노동자, 농민 등 민중들의 생존권 투쟁 대열 앞에서 공권력을 제 멋대로 휘두르고, 개악된 집시법으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더더욱 제한하려는 모습을 계속 보는 우리로서는 현재 경찰의 모습을 '빈수레가 요란하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4일 남영동 옛 보안분실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 4일 남영동 옛 보안분실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또 "경찰 자체의 변화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자신들을 포장할 수 있는 포장재로서 '인권'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이용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라며 "혹여 '수사권 조정'에 있어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행사가 열린 남영동 옛 보안분실은 지난 7월 경찰청이 "과거 경찰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 인권경찰로 새출발"하겠다며 '경찰 인권기념관'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영순 의원(민주노동당)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경찰청 보안3과인 남영동 분실은 보안4과인 홍제동 분실과 보안3과로 통합돼 홍제동으로 이전했지만 두 과의 인원과 기능은 고스란히 합쳐졌다. 이 과정에서 기존 3과에는 없던 5계와 6계가 신설되었고 102명이 배치된 거대 과가 탄생했다. 이미 지난 1999년 경찰청 직제령 개정으로 보안4과가 폐지되었는데도 최근까지 계속 운영하고 있었음이 드러난 상황이어서 경찰로서는 아쉬울 게 없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지난달 26일 경찰청에 대한 국감에서 "단지 보안 4과장 1명만이 다른 부서로 배치되었을 뿐"이라며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또 "남영동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것은 이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과 기능이 민생치안 영역으로 재배치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다른 곳으로 이사 가서 기능과 역할이 살아있고 건물만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며 "남영동 보안분실은 국민에게 돌아오지 않았다"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의 국감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말 현재 전국 42개 보안수사대에 2478명의 보안경찰이 배치되어 있다.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밀실형 안가는 남영동 폐지에도 불구하고 △서울 홍제동·옥인동·장안동·신정동 △부산 다대동 △대전 옥계동 △광주 봉선동 △대구 범어동 등 30개에 이른다.

한편 이날 선포식에서는 1987년 남영동 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 열사 관련 영상이 상영됐다. 하지만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 씨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행사장 앞에서 발걸음을 돌린 박 씨는 "그 사람들이 무슨 추모를 한다는 말인가"라며 "참석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인권회의는 "이벤트 성의 행사로 요란하게 인권경찰을 선전할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뼈를 깎는 반성과 노력을 진정으로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잘못 사과 △보안분실의 전면 폐지 △수사와 집회현장에서의 인권침해 근절 △경찰관직무집행법과 집시법의 개정 등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