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자유화를 요구하는 전단을 교실에 배포한 학생을 퇴학시킨 학교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재심을 권고했다.
18일 인권위는 지난 4월 두발자유화를 위한 집단행동을 촉구하는 전단을 작성해 각 교실에 배포한 학생을 퇴학시킨 부산해사고등학교(교장 구대서)에 대해 "초·중등교육법 및 행정절차법이 정한 절차를 위반하여 해당 학생 및 학부모의 의견제출 기회를 충분히 부여하지 않아 인권을 침해하였다"며 학교장에게 퇴학처분의 재심과 함께 학생선도규정을 의견제출 기회가 보장되도록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당시 부산해사고 선도위원회는 관련 학생 3명에 대해 "일정 기간동안 전학을 하지 않으면 퇴학처분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2명은 다른 학교로 전학했지만 김 아무개 씨는 이를 거부해 결국 퇴학당했다. 학교 측은 선도위원회를 열기 전에 담임교사가 김 씨의 아버지와 면담했고 정식 퇴학 통보 전에도 담임교사와 생활지도부 교사 등이 5차례 면담해 전학을 권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권위는 "처분 전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는 것과 의견을 제출하지 않은 경우의 처리방법 등의 사항을 통지한 사실이 없고…(당사자와 학부모의) 의견이 담임교사를 통해 선도위원회에 충실하게 전달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징계에 대한 학생 또는 학부모의 의견진술 기회 등을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제18조 제2항과 침해적인 행정처분 이전에 당사자에 대한 의견제출 기회보장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행정절차법 제22조를 위반했다며 "적법절차의 원칙을 위반한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번 권고에 대해 부산해사고 관계자는 "인권위 권고에 따라 해당 학생에 대한 재심을 할 예정"이라며 "(의견제출 기회가 보장되도록) 학생선도규정의 개정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부산해사고는 화물선 등에 승선하는 '해기사'를 양성을 목표로 지난 1977년 대통령령으로 설립된 국립고등학교이다.
징계절차 아니라 징계의 이유가 근본 문제
학교 측의 재심 계획에도 불구하고 징계 자체가 취소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부산해사고 관계자는 "우리는 해군사관학교처럼 정모를 쓰는 특수한 학교"라며 "두발을 일반학교처럼 길게 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또 "(학부모가) 교육청에도 진정해서 문제가 됐는데 교육부에서는 (문제없는 것으로) 종결처분이 났다"며 "인권위는 좀더 약자 편을 들어서 그런 모양"이라고 말했다.
인권위는 지난 7월 두발자유는 "학생의 기본적 권리"라면서 학칙 제·개정시 학생의 참여를 보장할 것을 교육부에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동시에 "두발 제한과 단속이 교육의 목적상 필요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도록 할 것"을 주문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준비위원인 고등학생 전누리 씨는 "한창 두발자유운동이 불붙었을 때 인권위는 학생들의 참여보장을 지적하면서도 문제해결에는 도움이 안 되는 물타기를 했다"며 "일선 학교에서 두발제한은 여전해 아이들은 다시 거리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광화문에서 두발제한폐지 촉구 집회를 연 청소년들은 다음달 3일 '학생의 날'을 맞아 또다시 거리축제를 열며 두발자유운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집단행동 금지하는 학칙도 문제
한편 인권위가 집단행동 자체를 금지하는 학칙에 대해서도 침묵을 지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부산해사고 관계자는 "학생들을 선동하면 학생지도가 어렵게 된다"며 집단행동을 금지하는 학칙의 개정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고근예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징계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한 권고는 당연한 것"이라면서도 "학생들의 집단활동이나 의사표명을 금지하는 규칙 전반에 대해 다루지 않고 징계절차의 문제점만을 다룬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또 "두발규제를 인권침해라고 결정할 때 인권위는 학교 안 인권침해에 대한 전반적인 정책권고 검토를 하겠다고 했는데 올해가 다 가고 있는 지금까지도 계획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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