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정당·종교계·법조계·문화예술계 등 각계 대표 100여명은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민투표가 자치단체의 비정상적인 경쟁과 공무원들의 조직적인 찬성 활동으로 그 적법성과 신뢰성을 잃고 있다"며 "더 이상 결정절차로서의 법적 의미가 없고 즉각 중단되어야한다"고 요구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준호 경주 반핵대책위 상임대표는 "지역 어르신들은 이번 선거를 보고 '차라리 고무신·막걸리 선거가 양반'이라고 한다"며 "이번 주민투표는 노무현 참여정부의 최대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윤준하 환경운동연합 대표는 "불법선거운동을 눈감아주고 있는 한 지역의 선거관리위원회에 항의방문했을 때, 다른 지역에서 불법선거운동을 처벌하겠다는 발표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며 "자유당 때나 가능할 반민주적인 행위가 주민투표에서 자행되고 있고 이는 정상적인 선거운동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영순 의원(민주노동당)도 "국정감사 때 선관위를 상대로 공무원들의 불법 행위에 대한 수사를 요청했으나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절차적으로만 민주적이고 내용은 반민주적인 이번 선거는 당장 중단해야한다"고 요구했다.
원자력발전 정책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병모 환경법률센터 이사장은 "박정희 정권 시절 핵무기 개발을 위해 국민 동의 없이 시작한 핵발전은 처음부터 잘못되었고, 독일 등 많은 선진국들은 이미 핵발전 중단을 선언했다"며 "우리도 핵발전을 줄여 나가며 원자력발전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물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또 "주민투표법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부정투표 행위, 관권개입이 난무한 상황에서 핵폐기장 주민투표가 강행되는 것은 부안사태와 같은 매표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선언문을 통해 "분권과 자치를 짓밟고 지역감정·지역주의를 부활시킨 참사가 될 것이며, 참여정부가 참여민주주의를 짓밟는 폭거로 기록될 것"이라며 "주민투표를 강행한다면 그 결과에 승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인권단체연석회의도 성명을 내고 "부정투표 행위, 관권개입 행위는 명백히 민주주의의 근간을 유린하는 범죄행위"라며 주민투표 중단을 촉구했다.
투표운동에 개입한 공무원들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아래 공무원노조)는 지난달 25일 성명을 통해 "과거의 50년 굴종과 억압의 역사에서 우리들이 어쩔 수 없이 참여했던 부정선거가 우리 역사에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했는지를 다시 한 번 돌이켜 볼 것"을 주문했다.
각계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주민투표를 강행할 태세다. 정부는 지난달 31일 <국정브리핑>을 통해 "엄정한 중립과 공정선거를 감독하는 정부활동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계속되는 갈등조장 행동은 중단해야 한다"며 "정부의 기본원칙은 '현재 일정의 차질없는 수행'"이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