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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서울거리 누빈 전동휠체어 물결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요구 '전동 거리 대행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지난달 26일부터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공동투쟁단'(아래 투쟁단)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광화문역과 시청을 거쳐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까지 전동휠체어로 행진하는 '전동 거리 대행진'을 벌였다.

22일 국회앞에서 열린 '전동 거리 대행진' 발대식

▲ 22일 국회앞에서 열린 '전동 거리 대행진' 발대식



이날 오전 11시 국회 앞에서 열린 발대식에서 박경석 투쟁단 공동집행위원장은 "'전동'은 여러분들이 타고 있는 전동휠체어를 뜻하기도 하지만 '앞서서 움직이는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라며 "노무현 대통령이 공약했지만 국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시민들에게 선전해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도록 힘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영희 공동대표는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항상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었고 순종적으로 살 것을 강요받아 왔다"며 "오늘은 서울이지만 우리의 행진으로 전국의 장애인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자"고 말했다.

발대식을 마친 100여명의 행진참가자들은 여의도공원을 거쳐 지하철 여의도역까지 행진한데 이어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까지 이동하며 선전전을 진행했다. 경찰은 행진 과정은 물론 지하철 차량안까지 따라 들어와 장애인 1명을 4∼5명이 에워싸고 밀착 감시했다. 이에 참가자들은 4개조로 나눠 지하철 공덕역·애오개역·충정로역·서대문역에서 잇달아 내려 광화문역까지 인도로 행진했다. 이 과정에서 2시 10분경 지하철 공덕역에서 내린 뇌병변 1급 장애인 김 아무개 씨가 차도 진입을 가로막는 경찰에 항의하다 타고 있던 전동휠체어가 근처를 지나던 자가용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손을 다친 김 씨는 응급차에 실려 서서울병원으로 실려갔지만 다행히 큰 상처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쟁단은 22일 인권위 11층 배움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23일 다시 국회 앞까지 거리행진을 벌인다. 이에 앞서 오전 11시 광화문 정부청사 후문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 거부하는 노무현정부 규탄 결의대회'를 열 계획이다. 30일에는 국회 앞에서 '장애인 차별철폐 전국행동의날' 집회를 열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국회 논의를 촉구할 예정이다.

이날 경찰은 지하철 차량안까지 따라 들어와 행진 참가자들을 밀착 감시했다.

▲ 이날 경찰은 지하철 차량안까지 따라 들어와 행진 참가자들을 밀착 감시했다.



광화문사거리 인도를 따라 국가인권위로 향하는 행진 참가자들

▲ 광화문사거리 인도를 따라 국가인권위로 향하는 행진 참가자들



장애인차별금지법 어디까지 왔나?

노회찬 의원(민주노동당) 등 여야의원 37명이 지난 9월 16일 발의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안'(아래 장차법안)은 국무총리 산하에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아래 위원회)를 설립하고 피해자로부터 진정을 받아 가해자에 대해 시정권고·시정명령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장차법안은 위원회의 업무를 인권위와 유사하게 △장애인에 관한 법령(입법 과정 중에 있는 법령안 포함)·제도·정책·관행의 조사와 연구 및 그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관한 권고 또는 의견의 표명 △장애인 인권 침해 및 차별 행위에 대한 조사와 구제 △장애인 인권에 관한 교육 및 홍보 등으로 정했다.

위원회는 위원장 1인을 포함한 5인의 상임위원과 4인의 비상임위원으로 구성되며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위원장은 반드시 장애인이어야 한다. 또 위원 5인 이상은 장애인이어야 하고 그 가운데 2인 이상은 여성장애인으로 못박아 장애인 당사자가 주도하는 차별시정기구임을 분명하게 했다.

장차법안은 가해자가 위원회의 시정명령을 받고도 30일 내에 이행하지 않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이와 별도로 위원회는 1천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 장차법안은 차별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명시했고, 고의적으로 차별행위가 반복되거나 악의적으로 차별행위를 한 사람은 손해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에 해당되는 배상금을 물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했다. 위원회로부터 시정권고·시정명령을 받고도 이를 시정하지 않은 경우는 악의로 추정해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된다.

한편 장차법안은 소송이 이루어질 경우 장애인 당사자에게 불리한 결과가 초래되지 않도록 차별이 아님을 가해자가 입증하도록 하는 입증책임전환제도를 도입했다. 또 장애인 중에서도 이중차별을 받고 있는 장애여성과 장애아동들의 권리를 별도로 열거했다.

장차법안은 9월 29일 국회 보건복지위에 회부됐지만 상정되지는 않고 논의자체가 멈춰 있다. 지난 17일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송재성 복지부 차관은 "정부에서는 차별금지법을 일괄 제정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고 밝혀 정부에서 따로 장차법안을 제출하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보건복지위원장 이석현 의원(열린우리당)도 복지위 전문위원실의 검토 부족과 정부와의 교감 부재를 이유로 상정을 미뤘다.

이에 따라 인권위가 준비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이 정부안으로 국회에 제출돼야 장차법안의 국회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인권위는 장애뿐만 아니라 성별·병력·나이·성적지향 등 여러 차별사유를 포괄하는 차별금지법 시안작업을 2003년 시작했다. 지난해 10월에야 차별금지법 시안을 마련한 인권위는 올해 5월부터는 정강자·최영애 상임위원과 인권정책국·차별조사국 등으로 구성된 차별금지법 검토팀을 구성해 시안의 쟁점을 검토해 왔다. 지난달 10일 인권위 전원위원회 보고자료에 따르면 인권위는 간담회·공청회 등을 거쳐 인권위안을 확정한 후 내년에야 입법과정을 밟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