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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시급함을 빌미로 기본 원칙 망각"

한국노총·일부 시민단체, 비정규법 개악에 '타협안' 내놔 물의

국회 환경노동위 법안심사소위가 정부의 비정규 노동법 개악안을 심의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노총과 일부 시민단체들이 기존 입장을 버리고 타협안을 제시해 물의를 빚고 있다.

녹색연합,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여성단체연합, 함께하는시민행동은 1일 국회 기자실에서 이른바 '7개 시민단체 조정안'(아래 7개시민단체안)을 발표했다. 이들은 "노-사간의 좁혀지지 않는 이견과 거듭된 협상의 결렬로 비정규직 입법 자체가 좌초될 위기에 놓인 지금, 우리는 최선의 안이 아닐지라도 입법이 무산되는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제안하고자 한다"며 △기간제 최장 2년사용, 이후 고용의제 또는 무기계약 간주 △불법파견시 고용의제 하되, 소급적용 배제 및 경과기간 부여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노사정 공동논의기구 구성 등을 제안했다. 이는 그동안 민주노총과 공조하다 총파업을 하루 앞둔 30일 조정안을 내놓은 한국노총안과 유사하다.

7개 시민단체는 "조정안은 비정규직 입법의 최선의 대안이 아님은 물론, 더러는 우리 스스로의 원칙을 훼손하는 부분까지 포함하고 있다"며 "그만큼 비정규 법안의 입법은 절실하며, 실패의 후과는 누구도 책임질 수 없을 만큼 크고 두렵다"고 밝혔다.

이런 입장은 이들이 참여하고 있는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가 하루 전인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비정규직의 사용사유 제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명문화 △불법파견시 고용의제 명문화 및 파견 사업장 사용자 책임 보장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 등을 원칙으로 제시한 것과도 배치된다.


"차라리 연내처리 무산이 낫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 29개 노동인권사회단체들(아래 철폐연대 등)은 2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 노동에 대한 보호의 시급함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 꿰어 쓸 수 없듯이' 원칙을 저버린 수정안이 오히려 비정규 노동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경영계에 활용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진정 (비정규직) 보호를 바란다면 차별시정 외에 원칙에 대한 타협은 무책임한 것이며 그 진정성마저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국비정규노동조합연대회의(아래 전비연)도 1일 성명을 통해 "실로 참담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며 "냉정하게 보자면 정부·여당의 법안이 통과되는 것보다는 연내처리가 무산되는 것이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차라리 낫다"고 밝혔다. 전비연은 "진실로 '현실적인 것'은 요구안의 무원칙한 후퇴와 절충이 아니라, 투쟁에 힘을 보태며 비정규직 노동자 요구의 정당함을 엄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간제 기간제한이 아니라 사유제한이 필요

기간제와 관련해 정부안은 현행 1년을 넘지 못하도록 한 계약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임의로 해고할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이 기간을 일부 시민단체들의 제안대로 2년으로 줄인다고 해서 고용불안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사용자가 2년이 되기 직전 계약만료통보, 즉 해고를 할 경우 속수무책이고 2년마다 기간제 노동자를 다른 기간제 노동자나 파견노동자로 교체하는 것에 대해서도 대책이 없다는 것.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등 대항력을 키워 노동기본권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비연은 "현행 파견법에서도 사용사업주가 동일한 파견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하였을 경우 직접고용한 것으로 간주하는 규정이 있으나, 현실에서는 2년마다 파견노동자의 주기적 해고를 가져왔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7개시민단체안과 한국노총안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표명보다 더 후퇴한 것이다. 지난 4월 인권위는 "기간제 근로자의 지나친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기간제근로자의 사용을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허용하도록 '사유 제한' 규정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전비연은 "지금 상황에서도 근속기간이 2년도 못되거나 한 번도 계약갱신되지 않은 기간제 노동자들의 경우도 해고제한규정의 보호를 받는다는 전향적 판례들이 나오고 있다"며 "정부·여당·한국노총·7개 시민단체들의 안처럼 2∼3년까지 기간제를 자유로이 사용하도록 하는 입법이 이루어진다면, 이러한 전향적 판례들마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할 장치가 없어져 버린다"고 밝혔다.


'중간착취 합법화' 파견제는 폐지해야

파견허용업종을 현행대로 유지하고 불법파견의 경우 고용의제하되 소급적용은 배제하고 경과기간을 부여한 내용도 도마위에 올랐다. 7개시민단체안은 1998년 파견법 시행으로 파견이 허용된 26개 업종을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한국노총은 파견기간 2년 초과시 고용의제하되 금지업무의 파견과 무허가 파견의 경우 고용의무만을 두도록 했다. 게다가 파견허용업종을 노사정 협의로 시행령에 규정하도록 해 사실상 정부에 '백지위임'했다.

철폐연대 등 29개 단체들은 "파견법은…노동권 사각지대에 있는 파견노동자 양산에 앞장서 왔으며, 불법파견시 이에 대한 고용책임이 없는 현행법을 악용해 불법파견 노동자 양산 또한 부추겨왔다"며 파견법 폐지를 요구했다.


또다시 미뤄진 특수고용 노동자 기본권 확보

정부안에서 아예 다루지 않고 있는 특수고용 문제에 대해 7개시민단체안은 노·사·정 공동 논의기구를 구성해 내년 상반기 중 입법하자는 입장이다. 한국노총도 노사협상을 통해 내년 상반기에 추진하자는 안을 내놨다. 전비연은 "이미 노사정위원회에서 2년이 넘게 논의하였으나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사안"으로 "노사정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핵심적 원인은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인하는 정부와 재계의 입장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철폐연대 등은 "이들도 엄연히 노동자"라며 "법에서 소외받고 있는 이들에 대한 노동3권 보장은 더 이상 미룰 사항이 아닌 만큼 이번 법개정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1일과 2일 가동된 환노위 법안심사소위는 일요일인 4일 오후 2시에 속개된다. 법안이 소위를 거쳐 6일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의결되면 7일 법제사법위를 거쳐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1일 비정규 권리보장 입법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민주노총은 △3일 지역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제 △4일 민중연대투쟁 △5일 특수고용직 노동3권 쟁취의 날 △6일 불법파견 철폐의 날 등 총력투쟁을 이어가다 9일 비정규권리보장 입법완전쟁취 전국노동자대회를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