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가득 찬 이분법! 천사 대 악마, 진실 혹은 거짓, 하늘과 땅. 그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인류를 지배해온 것이 있다면, 아마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일 것이다. '여성과 남성' 이라는 생물학적 성(sex)에 기초해 사회화된 성(gender)은 '사람'으로 태어난 인간을 남성다움 또는 여성다움으로 만든다. 아마도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남자로 태어났으나 혹은 여자로 태어났느냐에 있을 것이고 이러한 성의 차이는 고정화된 기대치와 행동, 외모, 예절, 태도 등을 결정한다.
아기 옷을 사러 가면, 매장 직원이 성별을 확인해 여자아기는 분홍색, 남자아기는 파란색으로 골라준다. 지하철 공중 화장실에서 여성용 화장실에만 '아이를 눕히고 기저귀를 갈 수 있는 편의시설'이 존재한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광고·신문·방송에서 '부드러움', '싹싹함' 등은 여성이 갖추어야할 덕목으로 여기지만, '씩씩함', '강인함' 등은 남성의 덕목으로 인정받는다.
가끔 지겨운 이분법을 뒤집어서, 인간이 양성으로 존재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상상해 본다. 즉 남성 혹은 여성이 인간의 몸에 함께 존재하는 것. 그렇게 되면, 성에 따른 차별이나 착취도 없어질 것이고 누구나 원하는 방식에 따라 남성 혹은 여성을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될 것이다. 어찌 인간이 지렁이나 달팽이 같은 하등동물이 될 수 있냐며 분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상상해 보시라! 인간의 생물학적인 조건이 바뀐다면 그에 따라 인간의 사회·문화적 존재양식도 분명 변화할 것이다.
만약 인간이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지 않고, 양성이라는 '인간으로' 존재한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매우 다를 것이다. 예를 들어 화장실과 목욕탕이나 수영장의 탈의실에서 남녀구분이 없을 테고, 1 혹은 2로 시작하는 주민등록 두번째 자리의 일련번호가 무의미해질 테고, 여성다움 혹은 남성다움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성별분업이라는 이분법에 기초한 역할분담―즉 '가사 육아'는 여성이, '바깥노동'은 남성이―도 사라질 것이다. 게다가 '성감별 여아낙태'라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고정화된 성역할의 구분 없이 아이를 양육하고 가사를 책임지며 사회적 노동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황당무계한 발상이라고! 이런 말 자주 들어보지 않았는가!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라는!
- 2972호
- 여성,물구나무
- 최은아
- 200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