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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시간만 나면 자꾸 시청에 갑니다

요즘 시간만 나면 가는 곳이 시청광장입니다. 지난 3월 17일 돌아가신 금속노조 유성지회 조합원인 한광호 열사 시민분향소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지요. 그냥 발길이 저도 모르게 그곳으로 향합니다. 자꾸 마음이 쓰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발길이 그리로 간다는 말에 그런 뜻이 다 담겨있음을 아는 사람은 알겠지요. 동료를 잃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을 유성지회 조합원들이 타지인 서울에 와서 외롭지 않았으면 합니다. 고통과 슬픔이 절망이 되는 건 고립감을 느낄 때라는 걸 우리는 알지 않나요?

 

더구나 만 5년이 넘게 유성기업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조합원들이기에 마음도 몸도 온전하지 않은 걸 알기에 더 신경이 쓰입니다. 그의 소식을 듣자 조합 간부들은 또 누가 자결을 시도하지 않을까 마음을 조아리며 서로를 챙기기에 바빴을 정도였다니, 제 신경이 자석이 철을 향하듯 그리로 쏠리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니, 어쩌면 동료의 죽음만 슬퍼해도 힘든 데, 또 다른 동료의 죽음까지 막기 위해 걱정하고 분주히 움직이는 그들에게 미안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연대활동을 하게 되는 게 부채감 때문이라는데 저도 그런 것인지 모릅니다. 제 부채감은 2011년 용역깡패들이 유성지회 조합원들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고 소화기를 머리로 던지면서까지 회사가 직장폐쇄를 단행하던 그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때 전 변변한 연대를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때 창조컨설팅이라는 노무법인의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따라 회사는 엄청난 폭력을 휘둘렸습니다. 달아나면서 조합원들을 치고 달아났지만 경찰과 검찰, 법원은 용역깡패들도 제대로 처벌하지도 않았습니다.

 

 

강한 노조를 깨서 자기 배만 부르게 하겠다는 현대차

 

유성기업 노조는 중소기업이지만 노조가 강한 자동차부품회사입니다. 비정규직도 없고 현대차보다 통상임금도 높았습니다. 2009년 단체협약에 심야노동을 2011년부터 없애기로 합의를 할 정도였습니다. 현대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유성기업은 현대차의 지시를 그대로 집행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노조를 약화시키는 기획을 한 문건이 2011년도에도 발견되고 2016년 1월에도 발견돼 4월 13일 여용노조 무효판결이 나왔을 정도입니다. 주야2교대로 기계를 계속 돌리면 현대차의 더 많이 이윤을 남길 수 있으니 현대차는 심야노동폐지가 전세계적 방향이라도 도입을 최대한 뒤로 미루고 싶었을 겁니다. 물론 유성지회 노동자들의 싸움으로 세상에 심야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세상에 알려졌고 그 후 주야2교대는 주간2교대제로 바뀌게 됩니다. 하지만 유성은 아직도 주야2교대를 하고 있습니다. 유성지회 노동자들이 심야노동 폐지를 주장하게 된 건 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인데도 그건 여전히 바뀌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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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2011년 시행된 복수노조법을 악용해 어용노조를 만들었고, 매일매일 민주노조 조합원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귓속말로 욕을 해서 폭언을 유발하고선 그걸 녹취해서 징계나 고소․고발의 자료로 썼습니다. 몰래카메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임금을 삭감하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러니 조합원들이 아침에 출근하기 싫고 공장문이 지옥문 같았다고 할까요? 그래서 2012년부터 충남노동인권센터가 조사한 심리건강조사에서 고위험군 우울증이 43.3%로 일반인의 6배가 넘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12월에 만들어진 ‘노조파괴 범죄자 처벌, 유성기업 노동자 살리기 공동대책위원회’(약칭 유성공대위)에 사랑방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유성공대위 인권침해실태조사팀에서 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전 인터뷰를 해보니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상태가 너무 심각해 제대로 알리고 현장을 바꾸지 않으면 큰일이 나겠다싶었어요. 그런데 3월 17일에 한광호 열사가 자결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자꾸 자책하게 됐습니다. 왜 좀 더 일찍 유성지회에 연대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그래서 자꾸 시청으로 발걸음이 갑니다. 처음 분향소 천막을 치지 못하고 거리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며칠을 잤습니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지만 따뜻한 방구석에 혼자 들어가 잘 수가 없었습니다. 영정을 세울 한 뼘의 공간도 허용하지 않는 경찰에게 화가 나서, 노동자는 죽어서도 모욕을 당하는 현실이 비참해서 혼자 밤을 새울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함께 분노하고 함께 우는 게 제 마음이 덜 추울 것 같았습니다.

 

 

노조파괴는 살인이라는 게 알려졌으면

 

저는 이번 유성지회 노동자들의 싸움으로 사람들이 노조파괴는 ‘노조에 가입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같이 일하는 다른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일을 묵인할 때 그 직장은 정말 일할 맛이 나는 곳이 될까요?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은 편할까요? 아니 좀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노조가입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할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많은 것들이 괴롭힘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노동자 괴롭힘을 노조파괴 수단으로 쓰며 노동자들의 숨통을 쥔 사장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유성지회 조합원들이 예전처럼 웃으면서 공장에 다녔으면 합니다. 한광호 열사가 다니던 영동공장은 복숭아나무가 많은 한적한 시골에 있었습니다. 한 동네에서 자란 형․아우들이 다니던 즐겁게 어울리며 다니던 공장에 어용노조가 생기고 회사가 돈으로, 징계로 협박하며 민주노조 탈퇴와 어용노조 가입을 종용하면서, 사람 사이는 벌어지고 민주노조를 배신하고 떠난 이들에 대한 감정으로 마음에 녹이 슬었습니다. 동료관계도, 이웃관계도 심지어 가족관계도 깨졌습니다. 사측의 뻔뻔한 태도에 분노로 마음이 타들어갔습니다. 이번 싸움이 부디 승리해서 그 힘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이런 소망들이 자꾸 생겨나는데 어떻게 그걸 현실로 옮길 수 있을까요? 먼저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갖고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사랑방 후원인들이 함께 탄원서도 쓰고, 서울분향소에 조문도 오고 매일 밤 열리는 촛불문화제에도 오면 좋겠습니다. 그것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성냥머리와 성냥갑이 만나 성냥불이 켜지듯이 그렇게 서로 만나 스치고 부딪치다보면 ‘불’을 만들 때가 오지 않을까요? 그 불이 번져 유성지회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노동자들의 인권을 조금 더 끌어올리지 않을까요? 그러니 시민분향소에서 함께 만나 ‘인권의 불’을 일으켜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