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종로1가 사거리는 제가 출근길에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장소입니다. 무심한 듯 시간은 흘러가지만, 백남기 농민을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병원 입구 앞에서 오늘도 208일째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0일이 넘는 시간동안 백남기 농민의 몸 상태는 나빠졌고 지금은 심장이 간신히 뛰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가폭력’ 이라는 말을 처음 쓰기 시작한 때는 아마도 김영삼 정부 시절 인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가 군사정권을 벗어나면서 피해자들이 하나둘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인권운동은 과거 국가에 의해 이루어진 인권문제를 ‘국가폭력’으로,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이슈를 ‘불처벌’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조작간첩, 고문, 의문사, 518광주민주화운동 등등 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국가 차원에서 제대로 된 사과,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로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 가해자들은 자신의 잘못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전두환 씨는 5공 청문회에서 광주시민을 계엄군이 진압한 것에 관해 "좌파 세력의 공세 때문에 불가피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혔습니다. 심지어 최근 전두환 씨는 회고록을 집필하면서 자신은 발포명령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좌파세력’ 이라는 말을 들으니 민중총궐기에 나온 시민들을 ‘테러범’이나 ‘폭도’로 규정한 박근혜 정권의 화법이 전두환 씨와 다르지 않음을 새삼 확인합니다.
2015년 11월 14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로 쓰러지자 경찰, 새누리당 정치인들은 공개적이고 집단적이며 조직된 ‘공식 부인’ 전략을 취했습니다. 경찰은 일관되게 국가폭력을 부인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경찰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혹은 ‘그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방식으로 공권력 집행의 정당성을 주장하였습니다. 경찰은 민중총궐기가 ‘불법폭력’ 집회였기 때문에 강도 있게 대응한 것뿐이고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하였지요.
2015년 12월 22일 경찰은 민중총궐기를 진압했던 책임자 및 실행자들을 모두 영전하는 방식의 인사를 감행하였습니다. 경찰청과 서울지방경찰청에서 민중총궐기 집회를 대응했던 경비, 정보, 수사담당 인사들이 대거 승진하였습니다. 반면 백남기 농민 딸 백도라지 씨가 경찰 관련자를 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였습니다. 그러나 1차례 고발인 조사 이후 사건발생 6개월이 지났어도 검찰은 어떤 결과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한편, 경찰은 2015년 11월 14일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그날 서울지방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을 단장으로 하는 진상조사단을 만들어 위법, 부당한 경찰권 행사가 있었는지 진상조사를 하였으나 조사내용이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공개할 수 없다고 합니다.
백남기 농민의 사례는 2015년에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고 이미 한국이라는 나라가 잠재적으로 갖고 있는 폭력성이 드러난 것입니다. 한국에서 국가폭력의 뿌리는 건국 과정과 거의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백남기 농민 사건에서 저렇듯 부인전략을 취하고 있는 경찰과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믿는 구석이 있기에 뻔뻔하고 잔인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지 박근혜 대통령을, 전두환 씨를 규탄한다고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국가폭력으로 점철된 70년 건국의 역사를 민초들이 새로운 힘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 다른 해결책이 있을까요. 그 과정은 새롭게 우리의 정치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상상력에서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주 길지는 않은 시간 중환자실에서 엄마를 봐야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제대로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엄마를 향해 기도도 하고 원망도 하고..... 슬픔으로 하루하루 보내던 그 시절처럼, 지금 백남기 농민 가족들이 견디고 있는 시간입니다. 가족들만의 슬픔으로 남겨지지 않도록.... 슬픔이 만들어가는 공감의 연대를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슬픔이 다시금 우리를 일깨우는 힘으로 백남기 농민을 그리고 우리를 세울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