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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집회에 나왔다는 이유로 더 이상 국가의 공격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은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입니다. 오늘 저는 ‘위헌적인 직사살수 및 살수차운용지침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을 위하여 헌법재판소에 왔습니다. 마침 목요일 헌법재판소에는 김영란법 관련해 공개변론이 있는 날이라서 사람들이 북적였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사이로 백남기 어르신 따님이 보입니다. 기자회견을 하면서 백도라지 님은 “저희 아빠가 쓰러지신 지 27일째 되는 날이다. 쓰러지신 원인은 경찰이 쏜 물대포 때문이었고, 경찰이 시민을 그렇게 공격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앞으로는 더 이상 경찰의 무분별한 물대포 사용으로 희생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헌법 소원을 내기로 했다”고 아주 짧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다시는 아빠와 같은 희생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야기할 때 알 수 없는 블랙홀로 저 자신이 빨려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포로 인해 한 시민이 쓰러져 중환자실에 있은 지 27일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국가권력은 그 어떤 사과도 없고, 고소·고발에 대해서 그 어떤 조사결과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국회를 통해서 당시 살수차 내부 영상자료를 확보하려 했지만 경찰은 수사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 할 뿐 핵심적인 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다행히 오늘 법원이 살수차 내부 영상자료에 관해 증거보전 신청을 받아 주었습니다.

11.14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이 시민을 공격하는 모습은 과연 공권력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심각하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발생한 경찰폭력은 결코 우연한 사고가 아닙니다. 그날 그 거리에서 누구라도 크게 다칠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살기 힘들다며 거리로 나온 농민, 노동자, 시민들을 행해 경찰은 준무기인 물포를 앞세웠습니다. 물포는 집회시위 해산장비가 아니라 준무기 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제가 인권침해감시단 활동을 하면서 경찰의 집회관리를 여러 차례 감시하고 모니터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날 경찰이 사용한 물포는 단순히 ‘집회참여자 해산’을 위해 사용된 범위를 훨씬 넘어 그야말로 ‘적’을 향한 공격이었습니다. 직사살수가 다수였고, 특정인을 향한 조준살수도 목격되었습니다. 강력한 수압에 건장한 남성들도 몸이 휘청거릴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경찰은 물포를 6~7시간 내내 시민들을 향해 쏟아냈습니다. 정말 이러다 큰 사고가 날 것 같은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백남기 어르신을 포함해 시민들이 속속 쓰러져갔습니다. <위해성 경찰장비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경찰은 물포를 사용하기 전에 경고방송을 해야 하고 하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살수차운용지침>따라 경고방송 하고, 경고살수하고 본격살수를 해야 하는데 역시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물리력 사용에 있어서 필요한 최소한의 원칙은 사라졌습니다. 경찰은 시민들을 향해서는 법을 지키라고 하면서 정작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물포는 높은 압력의 물을 쏘아 집회 참여자를 강제로 해산하고 진압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습니다. 더욱이 최루액을 혼합하여 살수하는 경우 집회참여자들에게 물의 수압으로 느껴지는 물리적인 고통 외에도 신체적 감각기관에 고통을 줍니다. 영국 등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국가들은 물포가 척추골절, 뇌진탕, 안구 손상, 엉덩이 손상 등 신체에 심각하고 치명적인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물포 사용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집회를 해산시킬 목적의 물포 사용은 더 이상 용납해서도 안됩니다. 시민의 세금이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집회에 나왔다는 이유로 더 이상 국가의 공격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평화로운 집회를 지켜내기 위해 시민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한국에서 발생한 끔찍하고 심각한 인권침해를 조사하러 포럼아시아 등 국제인권침해감시단이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이들은 백남기 어르신이 물포로 쓰러진 것이 너무나 명백한데 왜 국가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지 사과 한마디 없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국가의 사과 그리고 진상규명, 대규모 인권침해가 발생할 때마다 반복해서 국가에 요구하지만 지금껏 제대로 된 적이 별로 없네요. 그리하여,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에서 인권침해감시단을 운영하였던 단체들이 모여 12월 3일 ‘민중총궐기 국가폭력조사단’을 출범하였습니다. 11.14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세부적인 것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큰 흐름을 잡고 경찰의 의도는 무엇이었고, 과정에서 경찰은 어떤 행위를 했으며, 그 결과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경찰폭력이 더 이상 불처벌의 영역으로 남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