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 제목을 짓는 것이 어렵습니다. 특히 무슨 글을 써야할지 많이 고민하지 못한 상황의 글은 더욱 그렇습니다. 이번에 쓰는 상임편지가 저에겐 그렇습니다. 9월 5일에 6개월간의 휴직을 끝내고 복귀한 첫날 상임편지를 써야하니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별로 고민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근황으로 지어보았습니다. 6개월이란 시간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보단 최근에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8월은 정말 너무너무 더웠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옥탑방은 낮은 천장과 창문이 3면에 뚫려 있음에도 바람이 집을 교묘하게 피해 가만히 있어도 온몸에서 땀이 쏟아집니다. 무더위가 시작한 7월 중순부터 8월 초까지 몸무게가 4킬로 빠졌습니다. 화장실은 고온다습한 구조라서 잠깐 들어갔다가 다시 샤워하고 나와야 했습니다. 결국 집에 있는 소형에어컨을 켰습니다. 환경문제와 누진세라는 고민을 잠깐 했지만 살고 봐야지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번 켜진 에어컨은 꺼질 줄 몰랐습니다. 잠깐 끄면 바로 집 온도가 34에서 37도까지 올라가는 상황에서 에어컨을 끌 용기는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전기요금 고지서를 몇 일전에 받았습니다. 중간에 전기 검침원 분에게 엄청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지라 정말 긴장했습니다. 휴가차 떠난 강릉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조차 집에 가면 고지서 나왔겠다. 이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졸였습니다. 겨울에 가스비도 별로 걱정하지 않고 살았는데 여름철 전기세에 대한 두려움이 이렇게 클지 몰랐습니다. 다들 그러셨나요? 그래도 저는 생각보다 조금 나와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세 자리는 쉽게 넘길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 정도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더위도 끝나가고 에어컨도 치워버렸으니 내년 여름까진 떨리는 마음으로 고지서를 받아보는 일과는 안녕입니다.
여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글들을 읽으며 내가 경험한 이번 여름과 다른 사람들이 경험한 여름은 조금 다르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물론 저는 “아 몰랑!” 하며 에어컨을 켰지만 환경에 대해 고민하며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 뜨거운 조리대에서 일하는 사람, 에어컨과 무관한 실외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같은 여름이라도 나와 그들의 여름이 각기 다른 것 같습니다. 같은 무더위라도 누군가의 더위는 내가 사회의 어디에 위치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계기일거 같고 누군가에겐 점점 심각하게 파괴되는 지구를 경험하는 일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무더위는 무엇을 느끼게 해주었나요?
더위를 집에서 견디다 보면 BGM처럼 음악을 틀어놓게 됩니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시원함을 느끼기도 하고 여행을 가고 싶기도 합니다. 최근 제가 가장 많이 틀어 놓은 음악은 ‘두 번째 달_판소리 춘향가’입니다. ‘두 번째 달’의 음악은 드라마 ‘아일랜드’로 아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들이 가장 잘 아는 음악은 포카리스웨트 BGM입니다. 나나나나나나나~ 이렇게 음악이 나오면 손예진이 뛰 김소현이 뛰어갑니다.
최근 ‘두번째 달’이 내놓은 앨범 ‘판소리_춘향가’는 저희가 알고 있는 그 춘향가를 담고 있습니다. 제가 국악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이 앨범을 들으며 소리에 푸욱 빠지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남도민요를 찾아 들어보고 다른 판소리들도 찾아보게 됩니다. 예전에 소리는 저에게 그렇게 흥미를 주지 못했었는데 다시 듣게 된 우리소리는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갑자기 왜 저에게 소리가 이렇게 흥미롭게 다가왔을까요? 조금 신기해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10대 때부터 펑크락을 엄청 좋아했습니다. 특히 거친 가사와 사운드의 펑크락을 들으며 사람들과 몸을 부딪치는 걸 즐겨했습니다. 그때의 제 감정은 ‘악’ ‘분노’ 이었습니다. 분노를 표현하는 것, 악에 받친 감정이 저에겐 익숙하지만 판소리나 민요의 ‘한’ ‘구슬픔’ ‘서글픔’과 같은 감정은 제 감정과는 무관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한’ ‘구슬픔’과 같은 감정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물론 없던 감정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 감정이 모여 ‘악’ ‘분노’로 이어졌을 겁니다. 하지만 ‘악’에 바친 마음과 ‘한’시린 마음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펑크락 보단 블루스, 우리소리 같은 음악에 마음이 더 움직입니다.
아마도 지난 몇 년간의 삶이 저에겐 ‘한’스럽고 ‘구슬픈’ 일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거리에 앉아 외치는 사람들의 숫자는 늘어나고 자신의 존재를 혐오하고 차별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도 오히려 사회는 그들을 고립시킵니다. 가진 자들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행동합니다. 예전엔 악에 바쳐 그들에게 분노했는데 지금은 마음 한편에 ‘한’이 생깁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아직 저는 ‘한’스럽고 ‘구슬픈’ 감정을 어떻게 표출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글에서도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몰라 글이 오락가락 합니다. 뭔가 내 마음에 ‘한’이 생긴 거 같은데 그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지? 그 감정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모여지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저는 ‘한’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6개월만에 사랑방에 복귀 했습니다. 이제 이 감정을 어떻게 내 활동과 삶속에 녹아내리게 할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오랜만에 복귀한 사랑방과 활동이 익숙해질 무렵이면 제 감정 또한 익숙해 질 것 같습니다. 다음 상임편지를 쓸 무렵이면 그 마음을 제 운동과 삶속에서 표현하고 있겠지요? 6개월만에 복귀한 사랑방에서 사람들과 그 감정을 또 다른 무엇인가로 바꾸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