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는 최근 어려운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소속단체들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논의에 참여하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참여 재고에 대한 원칙과 절차’를 마련하였습니다. 두 번의 전체회의를 거치며 결정한 내용도 중요하지만 함께 논의해가는 과정에서도 소중한 성과를 남겼습니다. 외부를 향한 연대체의 목표를 실현하는 데에만 급급하지 말고 소속단체들이 연대체의 목표를 체현하는 조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공감대를 이룬 것이 그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간 여러 연대체 운동의 지평을 넓히는 한 걸음이기도 합니다. 부적격 단체에 대한 징계나 자격 제한 등으로 논의를 가두지 않고 운동 전체의 성찰과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서로의 감수성과 경험 나누기를 회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서로를 이해하며 깊은 연대를 이뤄가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두 번의 전체회의를 통해 정한 절차에 갇히지 않고 기억되어야 할 원칙일 것입니다.
우리가 차제연 논의 과정에서 보게 된 노동자연대의 태도와 행동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우리는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그저 법 하나 만드는 운동에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이 차별에 단호하게 맞서고 평등을 향해 담대하게 전진하는 운동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존엄을 무너뜨리는 차별에 맞서기 위해 차제연이야말로 가장 강한 평등의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최근 보게 되는 노동자연대의 태도와 행동은 평등과 연대를 질식시킬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차제연의 소속단체로서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책임을 느끼며 아래와 같이 입장을 전합니다. 노동자연대가 차제연의 소속단체로서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에 함께 하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입장에 귀 기울이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연대체에 함께 하는 태도에 관하여>
차제연이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참여 재고에 대한 원칙과 절차’를 논의하게 된 배경은 차제연으로 수신된 메일이었습니다. (각주: 5월 9일 최초로 재고요청 메일이 차제연 공식메일로 접수된 이후 진행경과를 공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5월 31일 오전 절차논의를 위한 공집장 회의소집, 5월 31일 오후 노동자연대의 공집장회의 규탄 성명발표, 6월 22일 4차 차제연 집행위회의에서 차제연 참여 재고 요청 건 논의, 6월 27일 4차 차제연 전체회의에서 차제연 참여재고 요청 건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참여 재고에 대한 원칙과 절차 안’ 논의, 7월 26일 5차 차제연 전체회의에서 차제연 참여재고 요청 건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참여 재고에 대한 원칙과 절차 안’ 논의) 메일의 발신인은 자신이 “노동자연대‧대학문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라고 밝히며 노동자연대의 차제연 참여 재고를 요청했습니다. 메일을 확인하게 된 공동집행위원장단(공집장단)은 이 사안을 어떻게 다룰지 논의할 예정이었습니다. 이를 우연히 알게 된 노동자연대는 자신이 ‘성폭력 가해 단체’ 혐의를 받으며 활동할 수 없다며 공집장회의 참가를 요구하고 참가가 거절되자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집장회의는 좌파 노동단체의 배제를 중단해야 한다” 성명 원문은 차제연 메일로도 회람됐으며 노동자연대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https://workerssolidarity.org/p/21607)
노동자연대는 “당사자 단체인 노동자연대의 참가를 보장”하지 않았다고 항의했습니다. 집행위원회와 두 차례의 전체회의를 거치며 노동자연대의 참가가 충분히 이루어졌음은 이제 노동자연대도 수긍할 것입니다. 공집장단이 노동자연대의 차제연 참여 재고 요청 메일을 받고 이와 관련된 논의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숙고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메일에 담긴 문제제기를 차제연 전체를 향한 것으로 무겁게 받아들이면서도 지목된 단체를 배제하는 것으로 문제제기를 회피하지 않으려고 소속단체들이 함께 노력한 덕분입니다.
성명에서 노동자연대가 주장한 것과 달리, 공집장단이 “이런 종류의 메일을 어떤 방식으로 다룰지 절차만 논의한다”는 점을 말하고 회의 참가 요청을 거절한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서운할 수는 있으나 항의할 일은 아닌 것입니다. 게다가 노동자연대의 성명을 보면 노동자연대의 공집장회의 참가 거절은 더욱 타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비방 메일이 왜 기각돼야 마땅한지 노동자연대의 주장을 청취”해야 할 의무가 공집장회의에 있지도 않으며, 노동자연대가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려는 의도로 공집장회의에 참가했다면 차제연 전체 논의 준비가 더욱 어려워졌을 것이 충분히 짐작되기 때문입니다.
노동자연대는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공집장회의 결과나 이후 논의를 기다리지도 않고 공집장회의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성명은 공집장단에 대한 불신으로 일관하며 읽는 것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습니다. 노동자연대는 ‘반드시’ 직접 참가해야 한다고 우기며, 회의 ‘직후’ 회의 결과를 알려주지 않은 것이 “기본 예의조차 없는 태도”라고 비난했습니다. 차제연 활동을 위해 가장 헌신하는 공집장단에 일말의 신뢰도 보내지 못하며 비난하기에 급급한 노동자연대의 태도는 노동자연대가 왜 차제연에 함께 하려는지 의문을 갖게 합니다. 노동자연대는 심지어 일부 성소수자 단체들의 우경화가 “좌파적 노동단체인 노동자연대가 배제되고 있는 진정한 이유”라고 주장했습니다. 제 몫의 성찰을 타 운동에 대한 문제제기로 대체하는 노동자연대의 태도에 기가 찰 따름입니다. 자신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모두 부당한 것이고 자신의 입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모두 거짓인 것처럼 달려드는 노동자연대의 모습은 연대체에서 함께 하기 어려운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지향과 감수성에 관하여>
노동자연대는 메일에 언급된 ‘최초 사건(2011년)’이 자신의 조직과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노동자연대가 성폭력 가해나 은폐를 한 사건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 자체를 여기에서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관련이 있든 없든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존엄을 지키려는 노력이 운동사회 전체에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또한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은 반차별운동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역량입니다.
자신에게 가해진 혐의가 부당하다고 여겨질 때 노동자연대가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 것 자체는 막을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운동사회의 일원으로서 반성폭력운동의 기초를 훼손하지 않아야 하며, 차제연의 소속단체라면 더욱 평등을 이루기 위한 감수성을 입장의 근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노동자연대가 혐의를 부인할 권리는 있을지언정 인간의 존엄을 훼손할 권리가 없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노동자연대는 ‘최초 사건’의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 가해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연대는 피해자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데에 여념이 없습니다. 성명서의 시작부터 끝까지 피해자의 메일 발신 이름을 수차례 언급하며, 피해자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허위’, ‘무책임한 비방’이라고 단정하며, 연인과의 ‘결별’ 때문에 ‘성폭력 당했다고 주장’하는 일이 ‘거듭’ ‘반복’되는 것처럼 음해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연대의 입장은 한국사회가 성폭력 피해생존자를 대하는 태도와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인권침해 사건들에서 피해자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피해자에 대한 공격과 낙인입니다. 피해자가 피해를 당할 만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피해자의 요구나 주장에 숨은 의도가 있는 것처럼 몰아가며 인권침해를 부인합니다. 그 결과는 구조적 인권침해의 지속과 반복일 뿐입니다.
또한 노동자연대는 피해자를 고립시키기 위해 신뢰성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고 있습니다. 지지하던 사람들조차도 ‘그 말을 믿지 못’하는, 신뢰하기 어려운 사람인 것처럼 낙인찍고 있습니다. 물리적 증거가 남지 않는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은 유일하거나 혹은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피해자가 사건을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성폭력 사건 해결에서 중요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노동자연대처럼 진술의 신뢰성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것은 피해자를 위축‧고립시키는 손쉬운 방법이 됩니다. 설령 노동자연대가 믿기 머뭇거려진다고 해도 피해자의 신뢰를 기각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식의 노동자연대 입장은 권력자들의 입장과 무엇이 다른지 성찰해야 합니다. 노동자연대가 피해자의 주장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일방적이고 터무니없는 비방에 의해 고통과 피해를 당해 온 사건”이라고 주장할 때 그것은 피해자와의 권력관계에서 절대적 우위에 있는 자신의 위치를 성찰할 줄 모르는 무능력과 무책임을 입증할 따름입니다.
노동자연대는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권리를 가진 주체이며 그저 우연히 불운을 겪게 된 피해자가 아니라 인권침해의 구조에 맞서 저항하는 주체라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노동자연대와의 관련성을 부인하려는 주장이 2차 피해를 양산할 뿐만 아니라 ‘최초 사건’에 내재한 폭력성마저 부인하는 효과를 갖는다는 점도 우리는 우려합니다. 어떤 관점에서 사건에 접근하든, 성폭력이 아님을 주장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폭력에 가담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찾는 데 시간을 쓰는 것이 운동조직다운 태도일 것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함께 하려는 단체라면 더욱 더 섬세하게 사건을 둘러싼 폭력의 구조를 살피고 변화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노동자연대에 요구합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소속된 우리 단체들은 다음과 같이 노동자연대의 변화를 촉구합니다.
△ 노동자연대는 2차 피해를 발생시키는 모든 가해 행위를 즉각 중단하십시오. 여기에는 피해자를 공격하는 내용이 담긴 여러 입장글의 삭제 또는 수정이 포함됩니다.
△ 노동자연대는 ‘최초 사건’ 이후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공격해온 태도와 행동을 반성하십시오. 그리고 피해자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노동자연대는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관철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함께 하는 단체들의 우려와 제안에 귀 기울이십시오. 자신에 대한 비판에 귀 막고 타 단체를 비난하는 자기합리화를 멈추십시오. 노동자연대가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동료로서 함께 하기를 원한다면 위와 같은 변화를 확인시켜주십시오.
△ 만약 노동자연대가 성찰과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 단체들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을 노동자연대와 더 이상 함께 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2017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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