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초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생명권과 안전권 조항을 신설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기본권·국민주권 강화 관련 헌법개정안 발표문>에서 “세월호 참사와 같은 각종 대형사고, 심심치 않게 들리는 묻지마 살인사건 등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며 “이에 헌법에 생명권을 명시하고, 모든 국민은 안전하게 살 권리를 갖는다는 점을 천명”하겠다고 밝혔다.
정권 초기부터 이번 정부는 생명과 안전을 강조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적극적으로 만났고, 진상 규명에 대해서도 열의를 밝혔다. 세월호 4주기를 맞아 치러진 정부합동 영결 추모식에서 이낙연 총리는 "세월호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한 대한민국을 기필코 건설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다짐이 무색하게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밀양 세종병원 화재 등 대형 참사는 끊이지 않고 있다. 반복되는 참사와 무능한 대응, 사건을 덮고 넘기기에 급급한 참사 이후까지. 생명과 안전을 가치로써 천명하는 것과 권리로써 보장하는 것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넓어 보인다.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함께 고민을 나누기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생명과 안전, 권리로 자리잡고 있는가
토론회 1부 ‘생명과 안전, 권리로 자리잡고 있는가’에서 황필규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정부의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2015~2019)』에 대해서 “피해자의 권리를 ‘지원’의 문제로 협소하게 접근하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하며 재난참사와 이후 해결과정에서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함이 아니라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유엔과 국제개발법기구 등 국제사회에서 채택하고 있는 재난 상황의 원칙 - △ 인권에 기초한 접근, △ 인도적 원칙, △ 피해자 중심의 접근–을 소개했다.
노동자의 생명안전 권리에 대해서 최명선 노동안전보건실장(민주노총)은 정부의 생명안전 관련 주요 대책들이 변화하는 고용구조를 반영한 방향은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각 부처에서 세운 대책을 모아 범정부 합동대책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한 표지만 만들었을 뿐 정작 세부적인 이행방안 등에 대해서는 내용이 없으며, 부처간 협업 또한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전시행정이라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노동자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참여는 전혀 보장되고 있지 않으며, 노동자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기업 안전 규제완화 남발에 대한 대책 역시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진실을 밝혀야 할 국가의 책무는 이행되고 있는가
2부 ‘진실을 밝혀야 할 국가의 책무는 이행되고 있는가’에서 박상은 활동가(사회진보연대, 전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는 지난 세월호 특조위 경험을 돌아보며 재난참사를 조사할 때 경계와 범위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책임자 처벌 등 사법적 정의를 구하는 일과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진상규명 등, 두 가지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를 염두에 두며 조사 과제를 설정해야 하며 더 나아가서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종란 노무사(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는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한 과정에서 노동자의 알 권리보다 기업의 영업 비밀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과 사법부를 비판했다. 공장에서 실제로 일하는 노동자는 본인이 사용하는 약품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가 없다. 약품의 종류를 영업 비밀이라는 핑계로 숨기고 알려주지 않는 기업과 그 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법 제도 때문이다. 이종란 노무사는 ‘기업의 돈 벌 권리’가 아닌 ‘노동자의 건강권’을 중심으로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마쳤다.
생명/안전을 권리로 이야기하기 위해서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더 이상 국가의 품 안에서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 무엇보다 생명이 중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고, 우리는 안전할 권리가 있다고 모두가 생각하지만 정작 현실은 불안과 위험으로 가득하다. 헌법에 생명권과 안전권이 포함되고, 정부가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을 천명해도 불안은 줄어들지 않는다. 단순히 법/정책과 현실의 괴리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간극이 너무 넓고 깊다.
이럴 때일수록 생명과 안전을 권리로써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자리에 앉아서 국가가 보장해주는 만큼만 누릴 수 있는 게 안전이라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불안할 수밖에 없다. ‘권리’에서부터 질문이 시작될 때 실질적인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말뿐인 선언과 보여주기 식 행정을 넘어서 생명과 안전이 권리로써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제도와 정책의 위를 떠다니는 생명/안전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발걸음을 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