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있다 보면 걸려오는 전화의 절반쯤은 연대 요청입니다. 무엇을 같이 하자는 제안이지요. 메일함에 쌓이는 메일 중에도 연대를 제안하는 메일이 많습니다. 이러저러한 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해달라, 이러저러한 사업을 함께 주최해달라, 이러저러한 성명을 발표하려는데 연명해달라……. 받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방도 여러 단체들에 이러저러한 일들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많이 합니다. 매일같이 터지는 현안에 대응하거나, 사회의 변화에 주목하며 긴 안목으로 무언가 준비하려고 할 때 함께 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한 단체의 힘으로, 한 단체의 시야나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해야 하고 하고 싶은 활동들을 다 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연대라는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마음으로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보니 ‘연대’는 ‘힘’이 되기보다 ‘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조건을 받아들이고 전략적으로 연대를 해보자는 논의를 이번 총회에서 시작했습니다.
인권운동 안팎으로 만들어온 연대의 흐름
사랑방이 창립했던 90년대 초반에는 인권운동이 스스로 독자적인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강했습니다. 8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인권’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힌 양심수를 석방하라고 기자회견을 준비하거나 교도소 안에서 겪게 되는 부당대우에 항의하는 일이라고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랑방은 양심수뿐만 아니라 감옥에 갇힌 모든 사람들, 특히 가난해서 생계형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인권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런 활동들을 하면서 사회보호법 폐지 공동대책위원회나 행형네트워크와 같은 연대기구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 청소년의 인권에 주목하면서 함께 운동을 만들어가기 위한 연대를 추진하기도 했고요. 이 시기의 ‘연대’는 조금씩 인권운동의 영역을 넓혀가고 전문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소중한 힘이었습니다.
90년대 후반 ‘반독재 민주 정부’가 수립되면서 인권운동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기 위한 싸움을 준비합니다. 한겨울 노숙단식농성을 하며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들 때에는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화하며 역량을 쌓아가던 인권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의기투합했습니다. 국가인권기구가 만들어지니 민간의 인권운동도 하나의 세력으로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는 고민들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2003년 겨울 인권활동가들이 이라크 파병 철회, 노동기본권 쟁취,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등의 구호를 내걸고 공동행동을 벌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아마도 인권활동가들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날일까요? ^^;;;)에 국회에서 기습 시위를 벌이고 연행되기도 했습니다. 이때 함께 싸우면서 쌓인 신뢰는 2004년 인권단체연석회의를 만들어낸 힘이 되었습니다.
인권단체연석회의(이하 인권회의)가 발족하면서 인권운동 안팎으로 인권운동이 하나의 운동으로 한국사회에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인권회의는 인권운동이 ‘하나’일 수 없으므로 수평적인 네트워크로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많이 기울입니다. 동시에 다른 운동들과 어떻게 힘을 모을 수 있을지 다양한 모색을 하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는 인권회의로 경찰폭력 감시 활동 요청이 많이 들어왔어요. “우리가 큰 집회를 하려는데 경찰이 함부로 진압하지 못하도록 감시해 달라”, “농성을 하던 중 경찰이 우리를 폭력적으로 끌어내고 구타하는 등 인권침해가 심했다, 조사해 달라”와 같은 요청이 그것입니다. 인권운동은 이런 활동을 통해 저항하는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한 역할을 찾아 왔습니다. 2008년 촛불 때에도 거의 날마다 인권침해감시단 조끼를 입고 거리로 나갔지요. 대중의 힘이 모이는 자리를 지키자는 마음이었지요. 2006년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이나 2009년 용산참사 진상규명과 강제퇴거에 반대하는 투쟁 등은 조금은 달랐습니다. 인권운동이 스스로 그런 자리에서 싸우는 운동이 되자는 기운이 컸으니까요.
이런 활동들이 주로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모습이었다면, 2007년 차별금지법안에서 7가지 차별금지사유가 삭제되는 사태가 발생한 후 사랑방은 반차별운동에 적극적으로 함께 하게 됩니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차별, 하지만 개인만의 문제라고 볼 수 없는 차별에 맞서는 연대를 도모하게 된 것이지요. 2000년대 들어 적극적으로 펼쳐왔던 사회권 운동도 다양한 영역에서 여러 단체들과 함께 활동을 벌여냅니다. 주거권, 건강권, 물에 대한 권리, 노동권 등 어느 것 하나 인권운동만의 힘으로 주장하거나 행동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인권운동의 자리를 잡기 위해 연대를 도모해온 시기로부터, 더 넓어진 자리에서 더 다양한 단체들과 함께 힘을 모으기 위해 연대를 도모하는 시기로 넘어온 것이지요.
어디를 향한 연대인지 다시 물으며
그런데 문득 돌아보니 사랑방이 해온 연대가 너무 단체들 간의 연대, 소위 ‘상층’의 연대라고 불리는 모습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권을 실현해나가는 과정에서 인권단체를 비롯한 다양한 단체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손을 맞잡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데, 그건 단체들끼리 잘해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점차, 자리는 펼쳐졌는데 참여하는 사람들은 줄어드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집회는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고 힘을 모으는, 대표적인, 연대와 저항의 자리였는데 웬만해서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습니다. 인권운동이 경찰폭력을 감시한다며 열심히 보고서를 쓰고 법 개악에 반대하고 경찰에 항의도 했지만, 경찰은 더욱 교묘하게 집회나 시위를 통제하고 감시합니다. 경찰폭력 감시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연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활동 자체에 힘을 쏟아야 하는 것 아닐까, 이게 인권운동사랑방의 고민입니다. 그걸 위한 연대의 방향은 무엇일까 하는 것이 앞으로의 논의 과제이고요. 아마도 이런 고민은 사랑방만의 고민이 아니고, 한국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모든 운동의 고민이지 않을까 합니다.
<20주년팀>은 작년에 진행된 20주년 워크숍에서 못다 나눈 고민들을 이어가는 논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상임활동가회의 또는 총회 자리를 통해 연대에 대한 크고 작은 고민들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당장 손발을 움직여 가야 할 곳에 가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곳들만 쫓아다니는 것을 경계하며, 우리가 바꾸어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지 않는 연대를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사람답게 살 권리인 ‘인권’이 어떤 경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가장 가까이에서 서로 길벗이 되었던 인권단체들과 함께 기대고 토닥거리는 것의 소중함도 잊지 않고요. 연대는 의무가 아니라 권리라는 말, 함께 살 때에 혼자 살 수도 있다는 믿음을 놓지 않고 천천히, 다시 가보겠습니다. 그런 연대가 곧 저항이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