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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사춘기 같은 시간을 보내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지독한 더위가 가시더니 어느덧 10월, 찬바람이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요즘입니다. 작년 이맘때쯤 상임활동가로서 보낸 1년을 돌아보며 편지를 썼던 것 같은데, 그 이후 시간이 쌓인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나름 사춘기 같은 시간도 보냈던 것 같아요.

쌓이기만 하고 줄지 않는 일들(물론 그런 배경에는 게으른 제 성격도 한 몫 하지만^^:), 사적/공적 관계들에서 삐치게 되는 상황들(물론 이를 잘 내색하지 못하는 제 성격도 또 한 몫 합니다만-_-:)... 이런 것들로 지쳐가면서 왜 그런 것 있잖아요, 뭔가 돌파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직접 대면해야 하는데 생각은 엉뚱하게 튀고 커져가게 되는 거요. 뭔가 수습하기에만 바쁜 저를 보면서 꼼짝도 하기 싫다는 맘도 들고, 그러면서 왜 매번 지는 싸움을 하는 걸까, 준비해서 먼저 치고 나가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네, 운동이란 것에 난 적합한 사람이 아닌 걸까 별별 생각들을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무력감으로 묵직했던 시간을 보내다가 장마 때였나, 집회를 마치고 비오는 길을 추적추적 걸으면서 한 활동가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런 제 상태에 대해 어떻게 혼자 다 하냐, 결국 다 같이 하는 거다 그런 말을 해주었어요. 어찌 보면 뻔 한 그 말이 위안이 되었던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 때의 제 상태와 별반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뭔가 뒷심은 생긴 것 같기도 합니다.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 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 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 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흔들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얼마 전 본 최규석 만화가의 「100c?」란 만화에 나온 말입니다. 만화의 배경이 되는 87년과 지금 제가 살고 있는 2010년, 물론 동일하게 볼 수는 없지만 닮은꼴들이 여럿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의 자리가 몇 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원하는 삶에 대한 열망을 나누고 그 열망을 더 뜨겁게 하기 위해 분명히 가야 할 길은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 번 상임활동가 편지를 쓰게 될 때는 흔들리지 않고 가야 할 길을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래보면서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