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24일, 30여 명의 인권활동가들이 국회에서 기습 시위를 했다. 노동기본권 보장하라! 이라크 파병 중단하라!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한다! 집회시위의 자유 보장하라! 이 해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그 다음해 인권단체연석회의를 낳았다. 지난 7월 2일, 인권단체연석회의(아래 인권회의) 10년을 돌아보며 인권운동의 연대를 진단하고 모색하는 워크숍이 열렸다. 서로 간절히 원하지만 점점 더 만나기 어려워지는 우리들의 위치를 돌아보기 위한 자리였다. 10년 동안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그대로인지.
인권회의가 결성된 당시는 IMF 경제위기를 통해 충격적으로 한국사회에 각인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이미 안착화되던 시기였다. 이론을 증명이나 하려는 듯 한국의 인권 현실은 끝도 없이 후퇴했다. 불안정노동이 급속하게 확대되었고 빈곤과 불평등의 지표는 기록 갱신 경쟁을 하는 듯했다. ‘신자유주의 경찰국가’라는 말이 무엇인지 집회와 시위를 향한 경찰의 폭력을 통해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사 영역에서 일부 진전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의 민주주의를 성찰하는 정치로 나아가고 있는지 믿기 어려웠고, 대통령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언했지만 소수자들이 부딪치게 되는 차별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인권회의는 이런 현실에서 함께 무엇을 해야 할지 탐문했고 행동했다.
억압에 맞서는 노동자 민중의 저항을 지키기 위해 집회 현장에 감시자로 함께 섰다. 각종 진상조사보고서와 인권침해감시보고서들이 발표되었다. 집회와 시위, 파업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들이 맞고 쫓겨나고 처벌받아야 하는 현실에 항의했다. 한편으로는, ‘인권’이라고 하면 흔히 사람들이 떠올리는 일부 권리들-주로 자유권이라 불리는-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반차별, 사회권, 노동권 등 새로운 인권 의제들을 발굴하고 운동을 촉진하기 위해 든든한 울타리가 되려고 했다. 새롭게 시작하는 운동들이 지지와 연대 속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힘을 모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움튼 운동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또 다른 운동들의 울타리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넓어진 인권운동은 서로 만나기 어려운 조건을 만들기도 했다. 서로 다른 의제, 다른 영역, 다른 고민들로 날마다 터지는 인권현안들에 대응하는 데에도 너무나 힘겹다. 게다가 이제 ‘인권’이라는 말만으로는 ‘우리’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이명박 정권 이후 재편된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이라는 말로 얼마나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분명하게 확인시켜줬다. 인권은 점점 더 대중화되고, 규범력을 얻기도 했지만 오히려 인권의 힘은 사그라지고 있다. 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인권’에서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사람답게 살 권리를 빼앗기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목소리들은 여러 영역으로 쪼개진 운동들로는 충분히 들을 수 없고 담을 수 없다. 그래서 인권운동이 모여야 할 이유는 더욱 커졌다.
인권운동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는 운동일 것이다. 인권운동의 연대는, 우리가 만들어가려는 세상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게 서로 손을 내미는 것이다. 어쩌면 ‘인권’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서로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가 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이야기 속에 세상을 바꿀 인권의 힘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을 잘 건져 올리기 위해 인권운동은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면 좋을까. 워크숍은 서로 만나기 어려웠던 조건을 함께 헤아리면서 더욱 잘 만나기 위한 고민을 이어가자는 약속으로 마무리됐다. 인권회의의 운영방안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인권운동의 연대를 촉진할 활동을 모색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