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어떻게 쓸까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처음에 미류에게 자원활동가 편지를 써보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는 이 글이 이렇게 사람 골을 빠개지게 만드는 녀석일 줄은 모르고 그냥 덥석 받았는데...... 어떻게 쓸지를 계속 고민하면서 ‘아무래도 처음인데 예의를 차리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렇게 써서는 도저히 글이 나오지가 않으니까 그냥 편하게 혼자 지껄인다는 느낌으로 써야겠다. 인권운동사랑방을 어떻게 처음으로 알게 됐는지가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인권영화제를 다녀왔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아무래도 확실한 기억은 내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소리 소문 없이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온 사랑방. 혹시 운명 같은 게 아닐까? 흐흐. 난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비인가 대안학교인 더불어가는배움터길에 다니고 있다. 국가에게 이래라저래라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학교라 일반 공교육 학교와 교육과정이 많이 다르다. 그 중 진로 과정의 절정인 인턴십!!!!! 인턴십은 많은 비인가 대안학교에 있는 일터 체험 수업이다. 약 한 달 반 동안 ‘학교 대신 여러 일터로 나가 사회를 미리 맛본다.’ 뭐 이런 취지의 교육과정인데 과연 어디를 가야 인턴십을 잘 갔단 소리를 들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인권운동사랑방으로 결정하게 됐다. 한 달 반 동안 사랑방에서 생활하면서 정말 마음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경험들을 했다. 그 많은 경험들 중에서도 1차 희망의 버스를 타고 느꼈던 경험들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다. 원래 희망의 버스에 별 관심 없었다. 사랑방 사람들에게 듣기 전에는 한진 중공업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노동자들은 힘들구나. 이 정도?’ 그냥 인턴십 기간에는 뭐든 열심히 하는 게 좋으니까 라는 마음가짐으로 참여했을 뿐. 희망의 버스를 내리자마자 보게 된 풍경은 정말 놀라웠다. 혼자 평소 ‘아마 80년대에는 이랬겠지?’라고 상상했던 것들이 현실로 구현된 것만 같았다. 경찰이 우리가 가는 길을 막아서고. 용역들이 정문을 막고. 결국 담을 넘고. 용역들이 소화기를 뿌려 대고. 그들을 패서 쫓아내고. 민중가요를 부르고. 정말 충격적이었다. 스스로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하며, G20이니 뭐니 하며 선진국 대열에 올라갔다는 국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니.. 진정한 민주화를 이룩했다는 국가에서 경찰이 시민들을 감시하는 일이 벌어지다니. 2008년 광우병 집회나 2011년 등록금 집회를 보면서 ‘아. 이젠 적어도 집회 중에 싸울 일은 없나보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계속 있었고, 다만 내가 외면했을 뿐이었다. 내가 학교나 집에서 신나게 떠들며 웃고 있을 때 다른 한 쪽에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처절하게 싸웠을 거라고 생각하니 내가 나쁜 놈인 거 같았고 그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다시 서울로 올라갈 때 많은 동지들과 포옹을 하면서 더욱 열심히 수많은 약자들을 위해 내 몸과 마음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새 들어 한진 중공업 투쟁 관련 기사에 달리는 악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요새 노동자들을 놀고먹으려고만 한다고. 자기네가 희생할 생각은 안하면서 경영진 돈만 뜯으려고 한다고. 난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노동자가 아닙니까?” 과연 그 높으신 재벌 임원들이나 그들의 자녀들이 인터넷에서 그런 악플을 달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이거나 실업자일 것이다. 그들은 왜 모를까? 그들이 그렇게 정리해고를 당해도 임원들은 월급으로 몇 천만 몇 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수많은 약자들이 굶어 죽어가는 동안에 많은 기업들이 흑자 몇 천억을 달성했다며 광고를 하는 사실을. 기업에게 일방적으로 버림받은 한진 중공업 노동자들, 밤낮 없이 일을 해야만 하는 유성기업 노동자들, 기본적인 노동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자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난 그들은 내 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미래. 내 친구의 미래. 내 형의 미래. 내 동생의 미래. 그렇기에 나는 더욱 열심히 사회적 계급이 사라질 때까지 노력할 것이다. 며칠 전 다시 한진 중공업 소식이 이슈가 됐다. 노조원들 대부분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노조 합의가 이뤄졌고, 경찰과 용역이 손을 잡고 김진숙 씨가 올라가 있는 크레인을 둘러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지 김진숙 씨의 절실한 긴급구제 신청을 거절했다. 이런 절망적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2차 희망의 버스가 떠난다. 어둠 속의 한줄기 빛을 찾기 위해. 여러 사정으로 인해 희망의 버스를 참석하지 못하게 된 것은 너무나도 아쉽다. 하지만 내가 없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내 마음을 받아 희망의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가줄 것이라고 믿고 있기에 난 7월 9일 날 안양에서 기쁘게 웃을 수 있을 거 같다. 한 달 반 인턴십 기간은 끝났지만 나와 사랑방의 인연은 이제 시작이다. 반차별팀의 변두리 스토리 프로젝트도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내가 도와야 할 일이 아직 너무나도 많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없어져도 모두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세상이 올 때까지 사랑방과 함께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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