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인 여러분께.
<사람사랑>을 통해 인사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이제 계절은 돌이킬 수 없는 봄인 듯합니다. 방에서 내다보는 바깥의 풍경이나 햇살, 바람조차도, 그리고 멀리 보이는 개나리와 목련의 꽃망울과 수양버들의 연녹색 가지들까지…모두 지금은 제 손으로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듯합니다.
수배자가 되어
저는 지금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당하고 있습니다. 순천향병원 장례식장 밖에는 정사복 경찰들이 물샐 틈 없이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저와 다른 수배자들까지 사진을 들고는 들고나는 사람을 훑어보고, 자동차의 트렁크까지와 바닥까지 검색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밖에 있었던 때가 지난 3월 초였습니다. 사랑방에 가 본 지 너무 오래되어서 수배-구속이 되기 전에 우리 사람들도 보고, 사무실도 볼 겸해서 다니러 갔습니다. 사무실은 여전했고, 사람들은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어지러운 내 책상에도 앉아보고, 피곤이 몰려와서 작은 회의실에서 잠도 자고, 참으로 오랜만에 사랑방 밥으로 저녁을 먹고, 다들 바쁜데도 억지를 부리다시피해서 충정로역 근처에 있는 막걸리 집에 갔습니다. 서울 장수 막걸리 맑게 따라서 한잔을 마시고, 두 잔째 술잔을 받았을 때 후배 기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검찰이 방금 전에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요.”
그 순간 탁자를 둘러앉아 있는 사랑방 활동가들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엔 빨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자리를 피해야 하는 것이죠. 상황실에 전화를 했더니 당장 들어오라는 소리였습니다. 제가 그런 전화를 받았어도 그랬을 겁니다. 두 번째 잔을 서둘러 비우고 사랑방 활동가들과 헤어져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언제 다시 사무실을 찾아올 수 있을지, 아니 집이고,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서울 거리를 언제 다시 보게 될지…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26년 전 강제징집 당하던 날처럼.
갇혀서 살아가기
그렇게 감옥 아닌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니 이미 한 달입니다. 이곳의 생활은 늘 불안정하고, 개인생활이란 게 없습니다. 언제고 경찰의 침탈을 받을 수 있다는 긴장과 함께 용산참사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을 어떻게 해야 하나를 놓고 머리를 맞대고 회의도 하고, 토론도 하고, 그러다가 의견 차이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합니다. 그런 곳으로 가족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옵니다. 아직은 씩씩한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것은 여기서 맛보는 가장 큰 행복입니다.
너무도 참담한 상황을 당한 유가족들은 아직도 강경합니다. 우리가 쉽게 만나는 이웃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던 그 철거민 남편을 망루에 올려 보낸 뒤에 새까맣게 타서 죽어 내려온 남편, 그들이 당했을 고통과 그리고 이어진 계속되는 국가폭력, 그리고 죽은 자마저 짓밟는 정권 앞에서 절규해야 했던 유가족들…. 그 분노가 너무도 크기에 쉽게 장례를 논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의 아이들은 여기서 학교를 다니고, 젊은 유가족들은 매일 투쟁 현장에서 아버님의 복수를 벼르고 있습니다. 그 날선 심정들은 뒤로 하고 세상은 용산을 잊어만 갑니다.
그리고 폭력집단, 테러집단으로 매도된 전철연 회원들 역시 우리들의 이웃일 뿐입니다. 노인층 회원들도 다수인 그분들은 수배자와 유가족을 지키는 규찰을 서고, 거리서명에 나서고, 저녁이면 어김없이 촛불문화제와 주말집회에 참석하고, 그 고단한 몸을 침낭에 구겨 넣고는 잠을 청합니다. 바닥투쟁의 경험이 많다지만, 벌써 그렇게 이 투쟁에 참여해온 지 70일이 넘었습니다. 그래도 전철연은 매우 단단한 조직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생활하고 있습니다. 용산참사로 철거민들이 5명이나 죽고 많은 이들이 부상을 당하고, 구속된 지 29일이면 꼭 1백일이 됩니다.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사과 한 마디 없이 용산범대위(정식 명칭은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를 탄압하는 데만 심혈을 기울입니다. 이미 상황실장은 구속되었고, 저와 이종회 공동집행위원장은 수배가 되었고, 더 많은 이들은 용산범대위 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소환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용산 그 이후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오를 데 없는 곳에 망루를 짓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철거민이 되어 용역에게 매 맞지 않아도 되고, 경찰에 쫓겨 다니지 않아도 되는 그런 개발은 불가능한 것인가요. 용산에서 철거민들이 이토록 비참하게 죽어간 일을 당하고도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는 채 다시 경찰은 외곽 경비를 서고, 용역은 철거민들을 폭행하고, 포클레인은 집을 허물고, 덤프트럭은 잔재처리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용산만이 아니라, 전국의 뉴타운, 도심재개발, 도시환경정비구역에서 일어나는, 오로지 재벌과 강남 부자들만의 이익을 위한 이 재개발사업들이 중단되지 않고 있습니다.
용산범대위는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4월 투쟁을 준비합니다. 오는 18일까지 특별검사를 요구하는 범국민청원·고발운동을 마무리하고, 용산 4구역 현장에서 농성을 벌이면서 살인개발을 저지하는 투쟁을 하고, 그리고 1백 일이 되는 29일부터 5월 2일까지 메이데이와 촛불 1주년 연대투쟁을 가지려고 합니다. 이런 투쟁 끝에 정부가 어느 정도 양보하면 장례를 치르게 되겠지요.
그때까지 이런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렇지만 영장실질심사 담당판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지만, 무책임하게 감옥으로 도피하지 않고, 이 투쟁의 책임을 지려 합니다. 제게 지워진 짐이 너무도 무겁고, 버겁지만, 결코 피하지 않으려 합니다.
저는 후원인 여러분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맘껏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랑방에 없는 날들도 여전히 잘 지켜 주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고마움을 어느 곳에 가더라도 늘 기억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안녕하시길 기원합니다.
2009년 4월 3일 밤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박래군 드림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