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 사랑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 제일 먼저 접한 사건이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반대 투쟁이었다. 국책 사업, 공익을 내세운 국방부의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당시 대추리 주민분들은 큰 고통을 겪고 있었고, 연대하던 활동가들도 힘든 싸움을 이어갔다. 경찰의 폭력적인 토끼몰이식 체포, 연행 작전을 피해 한밤중에 논두렁길을 타고 움직이던 활동가가 사무실로 긴박하게 걸었던 전화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이후로도 용산참사, 강정 등 국책이나 공익을 내세운 대규모 개발 사업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 문제에 사랑방은 늘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올해 인권운동사랑방은 공익을 내세운 정부와 한전의 폭력에 맞서 저항하는 밀양 주민분들을 만났다. 지난 6월부터 한 달간 인권운동사랑방과 다산인권센터 등 9개 인권단체가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시도 과정에서의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 활동을 벌였다. 그 결과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난 인권침해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고, 밀양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국책사업 혹은 공익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주민의 의사결정권이 무시되는 현재의 개발 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이번 활동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밀양 송전탑 문제에 대한 대응을 시작하면서 몇 가지 고민을 안고 들어갔다.
모든 인권사안은 보편적인 문제와 함께 그 나름의 독자성을 지닌다. 이번 밀양의 경우도 공익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그 곳에 살아오고 살아갈 사람들의 의견을 묵살하는 개발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한편으로는 ‘고령의 주민들이 더운 여름에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있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집단적인 국가 폭력에 노출되었을 경우 그 피해는 더욱 클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그분들을 부르고, 보는 과정에서 감정이입이 더욱 되기도 한다.
그런데 피해 지역 주민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것을 넘어 밀양 문제를 환기시키기 위해 그 분들을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름으로 부르고 접근하게 되면 부딪치게 되는 고민이 있다. ‘만약 이 갈등의 당사자가 도시에 거주하는 젊고 기운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면 이 싸움을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게 되었을까?’, ‘할머니’, ‘어르신’ 등의 호칭은 감성적으로 좀 더 사람들에게 다가서기 편한 지점이 있다. 다른 한 편에서는 거대한 가해자와 힘없는 피해자의 대립이라는 피해 구도가 더욱 선명해지는 점이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구도에서 힘없는 피해자라는 접근 방식이 과연 맞는가라는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인권운동사랑방이 그동안 지양했던 활동이 ‘피해자를 대리하는 운동’이었고, 20주년을 맞아 사랑방의 지향점으로 삼은 것이 ‘대중의 힘을 변혁적으로 조직하는 운동’이라고 했을 때 이러한 긴장감은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번 조사 과정에서도 그분들의 나이나 상황의 특수성에 따른 인권침해의 심각성은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어르신들의 힘겨운 싸움’의 이미지로 보이진 않기를 바랐다. 인권침해에 맞서 싸우는 그분들의 주체성에 좀 더 주목해서 그분들의 언어로 권리의 내용들이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인권활동을 하는 내내 내가 가질 수밖에 없는 신념, 마음가짐일 것이다.
밀양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도 이번 조사과정에서 계속 안고 간 고민이었다. ‘시골’, ‘농촌’의 이미지는 살아가기에는 힘들지만 바쁜 생활 속에서 마음의 고향처럼 소비되고, 언젠가 귀농이 되었든 전원주택에서의 삶이 되었든 머물고 싶은 곳으로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농촌이어서 의미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있는 돌아가고 싶은 향수의 공간으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것보다는 밀양이라는 공간이 ‘누군가의 수십 년 삶이 오롯이 기억되고 앞으로의 삶이 기억될 공간’임이 보여지고, ‘일상의 장소와 노동의 장소가 구분되지 않는 공간’이라는 특수성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난 수많은 공간들을 이주하면서 살아왔다. 공부, 집값 문제, 또는 다른 이유로 한 집에 10년 이상 머문 기억이 거의 없다. 대여섯 번의 이사를 한 것 같은데 어떤 곳은 아직도 기억나지만 대부분의 곳은 다시 한 번 찾아가고 싶어도 어디였는지 긴가민가한 경우들이 많다. 하지만 많은 농촌 주민들이 그렇듯 밀양에 사시는 분들도 수십 년간 한 곳에 정착해서 사신 경우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혹은 결혼을 통해 밀양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살아오신 분들이다. 그분들에게 밀양은 어릴 때 놀던 곳, 살아오는 과정에서 만나온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는 공간으로 애착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한 대부분의 주민들이 자신이 사는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간에 일터가 있다. 도시 지역에서는 보통 자고 쉬는 집과 일터가 멀리 떨어진 경우들이 많다. 그렇기에 어떤 개발이 자신의 삶의 모든 시간을 좌지우지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밀양이나 농촌 지역에서의 개발의 경우 주민의 모든 시간에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밀양 지역에 깔리는 송전탑은 단순히 내 집, 내 일터 중 일부를 관통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 공간을 관통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전자파에 대한 두려움을 비롯해 송전탑 건설 문제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듯 내 삶이 오롯이 기억되고, 관계들이 오랫동안 지속된 공간이자 일과 휴식을 비롯해 생존의 모든 시간들을 머물러야 하는 공간에서의 개발 문제를 단순히 돈 문제, 이주의 문제로 가볍게 치부할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밀양의 문제가 밀양만의 문제로 읽히기 않길 바랐다. 지금까지의 국책 사업이나 공익사업은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법적 절차에 따른 한 두 번의 의견수렴과 일방적인 통보와 보상으로 이어지는 개발자들의 이익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항상 정부와 개발자들은 주민의 반발을 님비 혹은 더 많은 보상을 위한 몸부림 정도로 여론몰이를 하였다. 밀양이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이 평택 대추리, 강정, 두물머리의 파괴 과정의 그것과 비슷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그래서 밀양 싸움은 일차적으로는 주민들의 삶의 공간을 지켜내는 싸움이 되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기존의 국책 사업 방식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이를 바꾸어 내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밀양 주민의 아픔은 청도, 울진, 당진 등 다른 곳에서 다른 시간에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밀양인권침해조사단 보고대회 모습
지난주에 강정 평화 대행진이 있었다. 강정의 주민들도 7년째 국책 사업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다. 폭력의 숨은 주체는 정부이고 외형적으로는 밀양은 한전과 맞닥뜨리고, 강정은 국방부와 삼성, 대림 등과 맞닥뜨릴 뿐 갈등의 원인은 다르지 않다. 내년에도 어디선가는 또다른 국책 사업의 폭력에 맞서서 삶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지금과 같은 방식이 계속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