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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단체탐방 28 직업병대책과 고용보장 쟁취를 위한 원진레이온 비상대책위원회


살다보면 많은 사람에게서 ‘골병들었다’는 말을 심심치않게 들을 수 있다. 산업재해 발생율 세계 2위, 92년 한해에 2천 4백 29명이 사망하고 10만 5천 6명이 부상당했다는 노동부의 공식통계 등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골병들었다’는 한마디가 의미하는 바는 크다. 건강해야 할 노동, 즐거워야 할 삶의 현장에서 ‘골병’이 들 수밖에 없다면, 병명도 모르는 채 또는 살기에 바빠서 이 ‘골병’을 앓아야만 한다면 많은 사람의 삶의 항해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깨가 결리고 뒷목이 뻐근하기만 해도 직업병이 아닌가 겁이 나는 요즘, ‘직업병’이라는 단어를 우리에게 전혀 생소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고 그 자신이 ‘직업병의 대명사’가 된 사람들이 바로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다.

59년 회사가 설립되어 93년에 회사가 패쇄조치 되기까지 이곳을 거쳐간 원진노동자는 1만 5천여명이다. 그중 이황화탄소 중독 직업병 판명을 받은 노동자는 88년 14명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3백 59명에 이른다. 그리고 이중 16명이 사망했으며, 16명의 사망자 가운데 2명은 직업병 고통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피해자는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 이황화탄소 중독은 진행성 질병으로 퇴사한지 23년 만에도 증세가 나타나고 있어 작업현장에서 실제로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질병과 죽음의 그림자를 언제 대면할지 모른다. 특히 이 병은 육체적 증상만이 아니라 정신질환을 유발하고 있어 본인과 가족이 겪는 고통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자상하고 일만 열심히 하던 아버지가 포악해지고 우울해지고 미쳤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기분이 들까?

원진레이온의 비극과 투쟁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1959년, 전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 씨가 일본에서 이미 20년 이상 사용한 중고기계를 사들였다. 물론 이황화탄소 중독증에 대한 비밀은 이 기계의 두꺼운 녹 속에 덮여있었고, 그 기계의 녹을 닦아내고 가동하는 순간부터 원진노동자들은 색깔 없는 이황화탄소 귀신에게 호흡기를 점령당한 것이다. 13차례나 사장이 바뀌고 상호변경을 거듭해온 부실기업, 집단해고와 높은 노동강도, 열악한 작업환경, 대표적 공해산업 등으로 묘사되는 원진레이온 속에서 노동자들은 병명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앓게 되었고 혹시나 쫓겨 날까봐 아프지 않은 척 위장을 하고 진통제를 밥알처럼 삼키며 참아야 했다. 건물주변의 나무들이 말라죽고 텔레비젼 안테나가 6개월도 안돼 삭아버리는 일들이 생겨났다. 그래도 직업병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황화탄소중독이라는 원인이 밝혀지고 희생자가 집단적으로 발생하게 되면서 원진의 노동자들은 원진레이온 밖의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88년 직업병을 인정받기 위한 투쟁으로 시작된 세상나들이 속에서 원진노동자들은 얘기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찾아다녔다. 검정 해골이 그려진 무명천을 가슴과 머리에 두른 이들의 검게 탄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노동운동 계, 보건의료계를 중심으로 지원대책위원회가 구성되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의 귀와 눈을 열게 하기 위해서 이들은 오랜 시간 북을 울려야 했다. 때론 극단적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88올림픽 성화봉송을 막고 원진직업병 실태를 전세계에 폭로하겠다는 농성도 했고, 고 김봉환 씨의 시신을 두고 사인진상규명을 위해 137일간에 걸친 장례투쟁을 하기도 했다. 고 김봉환 씨는 병원의 직업병소견서 발급에도 불구하고 비 유해부서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만으로 산재요양신청서가 거절당한 후 검진도 받지 못하고 전전하다가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각 시기마다 벌어진 일들을 여기서 자세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장기간의 철야농성과 단식투쟁을 병든 몸에 링겔처럼 달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 7년여의 세월은 수많은 합의서와 불이행, 번복, 재투쟁, 다시 합의서를 얻어내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간 얻어낸 합의서의 내용에는 노사가 동수 추천한 직업병판정위원회 설치, 작업환경개선과 전문가 확인, 장해민사등급은 1등급 최고 1억원에서 14등급에 1천만원을 지급한다, 직업병인정기준개정 등이 있다. 이러한 합의서는 안전사고 산업재해와는 다른 독립적인 직업병판정기구를 설치한 것이나 또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보상기준이 비현실적임을 감안하여 당사자간에 독자적인 장해보상수순을 규정했다는 점등에서 큰 성과였다.

이런 성과는 원진노동자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직업병 문제에 대한 관심확산과 법률이나 제도에 있어서의 변화 등 전국의 노동자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기에 의미가 크다.

원진노동자들이 요구해온 것 중에 들어 있는 산재종합병원설립이나 폐업이후 갈곳이 없는 노동자들의 재취업 등 많은 부분이 합의각서와는 달리 이행되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원진레이온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원진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질병과 생계유지의 이중고가 자리잡고 있다. 원진 출신이라는 것은 치명적인 직업병을 의미하는 바여서 이들은 어느 곳에도 취업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괴롭히는 일이 또 터졌다. 수많은 고통을 안겨 주었고 이제는 고철이 된 원진레이온의 기계를 중국에 수출한다는 것이다. 이미 중국노동자들이 1백여명 들어와 기계 해체작업을 하고 있다. 또 다른 곳에서 똑같은 고통이 되풀이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끔찍한 일이다. 인권의 보편성이나 국제성 등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이들은 이 비극을 막는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여주길 바라고 있다.

원진레이온이 걸어온 길은 올해 <얼룩진 원진레이온 이력서>의 출간, 장편소설 <검은 하늘 하얀 빛>, 다큐멘타리 형식의 비디오 테이프 등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정리되어야 할 것은 이들의 ‘건강’과 다시 ‘노동할 수 있는 삶’이고 이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대책이 아닐까?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직업병에 대한 ‘앎’을 주었다면 우리는 그 예방과 대책을 탄탄한 ‘길’로 닦아야 할 것이다.

<「인권운동사랑방」 류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