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고가는 사람과 차의 호흡이 가쁘기만 한 도시 한복판을 걸어본다. 제 빛깔과 냄새와 모양을 한껏 자랑하는 물건들이 즐비한 시장통을 둘러본다. 그러면서 주머니 속의 지폐와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무언가를 사야만 겠다는 욕구와 계속 씨름을 한다. 결국 덥석 사 가지고 집에 돌아오면 필요를 잊어버리고 처박아 버리는 일도 많고 필요한 것을 아무리 찾아도 사지 못할 때도 많다. 장삿군의 말과는 달리 화려한 광고와는 달리 헛점투성이 인 물건을 살 때도 많다. 이런 소비행위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내가 산 물건이 또 하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바로 “법률소비자”라는 말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도 나오지 않고 법률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왜 소비자일까? 법률소비자연맹을 찾아 들어본 대답은 이렇다.
국민은 납세자로서 국가에 대하여 공공의 서비스 특히 공적, 사적 법률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되는데 이것이 바로 법률소비자의 개념이다. 이런 개념을 이끌어낸 근거는 첫째, “국가와 공직자와 법과 제도”는 바로 개개인의 자유, 생명, 행복, 사생활, 사유재산, 기회균등의 보장 등에 그 존재가치가 있다고 할진대 국민은 이러한 천부적 인권과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의 주체로서의 지위에 있으며, 둘째, 국민은 대통령, 국회, 내각, 법원 헌법재판소 등의 모든 공직자를 직접, 간접으로 선출하여 국사를 위임한 선거권자, 주권자이며 최고의 국가기관으로서의 지위에 있으며, 세째, 국민이 국가의 일체 살림과 공직자의 의식주 생활을 부담하고 있는 납세자로서 공정하고 성실한 공공(법률)서비스를 받아야 할 소비자의 지위에 있다는 것이다(법률소비자연맹 간행 ꡔ인권과 국권ꡕ 중에서).
법률소비자연맹은 2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94년 2월에 공식 출범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다른 나라의 시민단체의 활동과 헌법, 사법제도 등을 연구하고 헌법재판소, 각급 법원, 국회, 지방의회 등의 방청모니터 활동 등을 해왔다.
서초동의 사무실 벽면에는 각종 신문에서 법률감시운동이나 사법비리에 대해 다룬 기사들이 잔뜩 붙어있다. 몇 가지만 훑어보아도 총체적으로 썩었다는 흔하디 흔한 말이 가득하다. 이것을 보며 법률소비자연맹이 생각한 활동들은 무엇일까?
굵은 먹글씨로 씌여진 ‘내외 삼대 공약’과 ‘5대 시민운동’이라는 목표가 사무실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내외 삼대 공약이란 내삼약-예의 염치(예절질서, 정의, 청렴 검소, 회개 개혁을 말한다), 재정협력(재정자립 없이는 고매한 이상과 사업도 실현, 성취될 수 없다), 실전연수(공동체의식, 교육과 연수)와 외삼약-온건준법(평화적, 민주적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추진한다), 공정촉구(어떤 이해나 주장에 편파, 동조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공정성을 감시, 견제, 촉구한다), 총력지원(불공정한 피해를 당한 사람을 모든 방법으로 지원 구제한다)이고, 5대 시민운동이란 국민의 의식개혁운동, 시민입법운동, 공정촉구운동, 피해구제운동, 법률교양운동을 말한다.
이중에서 기초가 되는 일은 국민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이라고 김대인 상임대표는 목소리를 높인다. 국가나 공직자, 법률제도 등은 할 수 없이 순종, 복종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국민 개개인의 행복의 성취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자는 것이다. 고지서나 출두요구서만 날라들어도 주눅이 드는 데서 벗어나자고 한다. 이를 위해 제대로 된 헌법공부를 하자고 한다. 우리 역사 속에서 국민의 인정을 받지 아니한 비 입법기관들이 국민의 입을 막고자 권리를 제한해온 독소조항들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그 최고법인 헌법이 우리에게 보장하고 있는 권리들을 제대로 알고 권력자들을 위해 하위법이 상위법을 갉아먹고 있는 모순을 뒤집어 보고자 한다. 그래서 국민의 책임과 의무는 ‘감시’와 ‘견제’와 ‘촉구’와 ‘요구’이다. 위의 내용을 법률소비자연맹에서는 “민주입국론”이라는 말로 부르고 있다. 그 동안의 활동은 “법률소비자”나 “민주입국론”를 설명하고 전파하는 강연과 글, 자료집 제작 등을 통해 이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데 가장 큰 목표를 두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발간물에는 ꡔ인권과 국권ꡕ과 ꡔ민주입국ꡕ이 있다.
한편, 전화와 내방상담을 통해 무료법률상담을 병행해왔는데 하루에 30여건, 일년간 800여건에 이르는 상담을 했다. 이 속에서 느낀 것 은 일반시민들이 상담하는데 부담스러운 변호사 사무실을 찾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과 일반시민들이 가장 기초적인 법률지식에서도 상당수 문외한이기 때문에 필요이상의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사건의 해결과정을 살펴보면 변호사선임 등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시민들이 상담을 통해 얻은 조언과 간단한 법률지식만으로도 스스로 뛰어다녀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법률소비자라는 말도 처음이지만 법정모니터제도 법률소비자연맹이 처음 실시했다고 한다. 94년 4월부터 서울의 주요대학 법학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실시되었고, 법률소비자연맹에 참여하는 교수들을 중심으로 수업의 연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법정모니터요원이 관찰한 사항들은 법정의 분위기에 대한 전체적 느낌, 법정에서 단위시간당 부과된 사건의 숫자, 변호사 선임시와 변호사가 선임되지 않은 경우에 있어서의 차이(변론의 기회에 있어서의 평등여부), 피고인의 인권에 대한 개선점 파악, 재판중인 부장판사 또는 단독판사의 태도, 국선변호인에 대한 소감, 법정 정리의 방청객에 대한 간섭정도 등에 걸쳐 있다.
그리고 법률시민대학강좌를 올 하반기에 열 계획이다. 주요 내용은 헌법 등 기본법과 소송절차법에 대한 공부, 주택임대차보호법, 의료법, 교통사고, 보험사건, 건축, 세무 등 시민의 일상생활과 관계된 법률 및 규정과 시민운동에 관한 공부 등이다.
법률소비자운동이라는 것은 아직도 생소하기만 하고, 처음인 만큼 벌여야 할 일들이 많기만 할 것 같다. 그 많은 요구와 일들을 성숙된 자세로 이끌어가기를 기대해본다.
<인권운동 사랑방 류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