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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공소시효 이유로 고문범죄 면죄부

헌법재판소, 황대권 씨 헌법소원 ‘공소권 없다’고 각하 결정


헌법재판소가 고문범죄 불기소로 인한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헌법소원을 낸 사안에 대해 ‘공소시효가 지나 공소권이 없다’며 각하한 사실이 27일 민가협에 의해 확인됐다.

헌법재판소 제2지정 재판부(재판관 김진우, 이재희, 조승형)은 15일 황대권(41)씨가 낸 헌법소원에 대해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피의사실에 대해서는 공소제기가 불가능하므로 이에 대한 헌법소원은 권리보호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며 각하 하였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헌법 제12조에 규정되어 있는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한다”는 취지보다 하위법인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공소시효를 앞세워 헌법소원을 각하하는 모순을 저질렀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황대권 씨는 구미유학생간첩사건(85)으로 20년의 형기중 11년째 복역중이다. 황씨는 85년 사건 당시 안기부에 의해 불법체포 되어 63일간이나 고문을 당하였고, 지난해 7월7일 자신을 고문한 안기부 수사관등을 서울지검에 고소했으나,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하였다. 이에 황씨는 서울고검과 대검에 항고, 재항고를 계속하였으나, 모두 기각되어 올 1월 헌법소원을 제출하였다. 황씨의 헌법소원이 각하됨에 따라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한 7명의 장기수들의 사건도 동일하게 각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상임의장 안옥희, 민가협)은 27일 성명을 내고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고문 등 비인도적 범죄에 대한 헌법소원을 아예 받아들이지도 않겠다는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30여년간의 군사정권에 의한 학살, 불법체포, 감금, 고문 등 무수한 인권범죄행위들에 대해서도 영원한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민가협은 이번 사건을 국내의 구제절차가 모두 완료되었기 때문에 유엔이사회에 제소할 것이라고 밝혀 고문문제를 유엔에 제소하는 첫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고문 등의 비인도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두지 않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정부가 가입한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B규약)과 고문방지조약에서는 고문에 대해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최근 아르헨티나의 연방법원이 지난 77년부터 79년 사이에 독재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고문, 학살 등의 범죄에 대해 피해자 구제를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고, 나치정권에 의한 고문, 학살 범죄자가 처벌되고 있는 것도 비인도적 범죄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국제법상의 2차대전 이후에 확립된 오랜 관례에 따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