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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얼치기 인권활동가가 어리바리 보낸 4월

어쩌다 보니 금쪽같은 안식주를 3월 총회를 마치자마자 쓰게 됐어요. 딱히 별거 한 거 없이 사무실에 복귀하니 4월이더군요. 안식주를 쓰느라 밀린 일들 하나씩 처리하고 그동안 건너뛴 회의에 참석하면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습니다. 4월 16일에도 월담 운영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있었어요. 오전에 속보로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또 사고 났나보다는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냥 넘겼었죠. 그런데 전원 구조했다는 오보에 뒤이어 수 백 명이 배에 갇힌 채 침몰했다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거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그 때만 해도 워낙 대형사고가 빈발하다보니 또 터졌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오히려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많았다는 게 더 눈에 띄었습니다. 그 날 월담 운영위도 5월에 있을 월담 문화제 자리를 어떻게 만들지 이야기하는 자리였거든요. 그냥 막연하게 안산 분위기가 걱정이라는 생각이었죠.

 

더 이상 관련 뉴스도 보지 않고, 다음날 자고 일어났더니 난리가 났더군요. 페북이나 트위터도 안 하고 집에 TV가 없어서 세월호 뉴스에 노출되지 않은 탓이었을까요? 세상이 온통 세월호 이야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오가며 만난 다른 단체 활동가들도 이번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습니다. 이 모든 게 저에게는 참 낯설었습니다. 활동가들은 이렇게 큰 사건이 터졌을 때, 여론이 쏠리면서 그동안 이슈화해왔던 사안들이 묻히는 걸 안타까워하면서, 이런 사회 분위기를 못마땅해 하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많은 활동가가 세월호 사건에 큰 충격을 받고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왠지 세상에서 나만 이번 사건에 공감 못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문득 그 동안 활동하면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상황을 옆에서 지켜봐야 했지만, 그 상황에 제가 이입되어서 힘들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정의하고 잘못된 것에 맞서 싸우겠다는 활동가지만 당사자는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남의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전히 내 일도 아닌 상황이라고나 할까요? 저의 마음과 감정도 딱 그만큼에 맞춰 왔던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운동은 다른 언어로 이 문제를 고민해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신과 나의 공통의 문제, 보편성 이런 말들을 자주 해왔고, 당신과 내가 처한 위치는 다르지만 ‘연대’ 할 수 있는 이유를 부단히 찾으려 했었고, 소위 당사자라는 위치에 대한 고민도 해왔습니다. 물론 이번 사건과는 정반대로 자신과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한 고민이 많았지만요. 아무튼 세월호 사건은 일정한 정치-사회적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사건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공명하고 단절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더 많은 고민을 던져준 것 같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모든 이들이 느끼는 비통함과는 이질적인 이 감정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공감이나 애도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 가능하다고 하던데 제가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