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사유는 ‘학원자주화·사회민주화’
지난 10일 새벽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붙여 분신을 기도한 동아리연합회장 한상근(27·격기3) 씨가 입원한 한강성심병원 중환자실 출입구와 복도는 갑작스런 선배의 소식을 듣고 달려온 학생들로 가득 찼다. 11일 오후 3시, 전신 3-4도에 90% 화상을 입어 의사로부터 단 1%의 가능성도 없다는 소식과 이날 새벽부터는 의식마저 잃어버린 상황이 전해진 탓인지 분위기는 침울했고,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씨의 분신은 가정문제로 인한 비관자살이라 보도한 언론이나 경찰, 학교측의 이야기와는 달랐다. 한 씨 어머니 또한 “집안문제는 결코 아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9일부터 한 씨와 함께 있었고 맨 처음 불길에 휩싸인 그를 발견한 총학생회 간부 홍아무개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사실은 보다 명확해졌다.
사건 바로 전날인 9일, 설연휴를 마친 총학생회 간부들은 총학생회실에서 모임을 갖기로 약속했다. 밤 10시부터 술자리가 마련되었고, 밤 12시경 얼굴을 비친 한 씨는 1시간 가량 기분좋게 술을 마셨다. 물론 취할 정도로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그리고 새벽 1시경 자리를 비운뒤 술자리가 파하는 새벽 3시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홍 씨는 새벽 4시30분경 우당탕하는 소리가 나서 문밖으로 고개를 내미니 화기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복도 끝부분에 불이 붙어 완전히 쓰러져 있었어요. 그는 몇 번이나 운동 열심히 해라, 나는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지요. 제가 담요를 갖다가 불을 끄고, 뒤이어 나온 한 학우가 물주전자를 들고 나왔어요. 그 뒤 구급차를 불러 용인 세브란스병원으로 향했어요. 구급차 안에서 그는 말하기 힘들어했는데 그러면서도 ‘열심히 생활해라’는 말을 했죠.”
홍 씨는 비록 한상근 씨가 유서는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분신 이유를 세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았다. 현시국에 대한 고민과 신임 동아리연합회장으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학원자주화추진위 중 대학종합평가인정제도 담당자로서 고민 등이다. 특히 학자부분은 학교측 관련자료 수집에서부터 마찰이 심했다고 한다.
또 10일 오후 5시 중환자실에서 한씨의 형과 이모 및 KBS 기자가 있는 자리에서 그는 “분신이유가 뭐냐, 학내문제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상근이는 의협심이 강하고 애국심이 남다른 학우입니다. 일본의 독도망언이 있은 직후 일본대사관 점거투쟁에서 대사관 담을 넘다 잡혀 불구속이 되기도 했고, 김형찬대책위 농성단 활동으로 15일간 명동농성을 벌이는 등 열심이었지요. 그런 만큼 시국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지요. 우리 모두 이번 사건을 책임지고 열심히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