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성급한 수사발표 이어 정치사찰 서둘러
황장엽 비서 망명사건으로 인한 '북한의 보복테러 비상' 소식에 곧이어 터진 이한영 씨 피격사건으로 정국은 확실하게 돌아섰다. 정부는 사건발생 다음날 안보·치안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북한 공작원에 의한 암살"이라며 국가안보론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언론은 북의 고정간첩 보복테러에 초점을 두고 기사를 일필휘지로 써내려 갔다. 17일 황경하 경찰총장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는 1천여 명의 인사들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기화로 임시국회에서 안기부법 무효화 논의는 입도 뻥긋하지 못한 채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한의 소행으로 규정하는 주요한 근거는 이한영 씨가 의식을 잃기 전 손가락 두개를 펴보이며 '간첩이다'고 말했다는 현장목격자의 증언과 범행에 사용된 총기가 북한 사회 문화부 요원들이 주로 사용하는 벨기에제 브라우닝 권총인 점을 들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19일 중앙·한국·한겨레 신문 등은 일제히 "간첩…간첩 말한 적없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현장에 있던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이씨가 간첩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목격자 증언뿐 아니라 이한영 씨 저격에 사용된 권총의 정체도 논란이 되고 있다. 경찰 수사본부는 당초 '4조우선 브라우닝 권총'이라고 발표했다가, 18일 '6조우선 브라우닝 권총'이라고 번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