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전북 익산 신동성당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평양에 다녀왔수다’ 토크 콘서트에서 한 고등학생이 두 사람을 향해 사제 인화 물질을 투척한 것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의 어떤 마녀사냥이 정점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재미동포 신은미씨의 방북기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가 오마이뉴스에 연재되며 폭발적 조회수를 기록했던 건 2012년의 일입니다. 출간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13년에도 이미 한국에서 강연회를 한 바 있습니다. 여행자로서 보고 들은 것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직접 만나본 북한 사람들과 그 사회에 대해 느낀 점을 솔직하게 풀어낸 이야기는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사실을 담고 있겠으나 어딘가 천편일률적으로만 그려지는, TV에서 쏟아내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과는 또다른 생생함이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누군가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을 법도 합니다. 보수단체들은 ‘북한을 인권 복지 국가처럼 묘사했다’며 신은미씨를 검찰에 고발했는데, 가령 "북에서는 임산부가 막달이 되면 이틀에 한 번씩 병원에서 집으로 방문 진료를 옵니다. 그러다 출산일이 가까워지면 매일 방문을 하구요. 저희가 (주: 신은미씨 일행을 안내했던 관광 안내원 노동자의 집을) 방문한 이날도 병원에서 찾아왔었습니다." 같은 발언들이 그랬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보기에 이런 발언은, 영락없이 국가보안법 제7조가 금지하는 반국가단체에 대한 찬양 고무 행위에 해당하겠지요.
그러나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아마도 누구나 저 말을 듣는 즉시 머리 속에 자동적으로 경고등이 켜지며 비판적 사고가 작동하리라 생각합니다. 저렇게 못사는 나라에서 저게 무슨 황당한 거짓말이냐거나, 설령 사실이더라도 선택 받은 일부 노동자의 사례일 것이라고, 아마도 틀리지 않게 평가하겠지요. 그것도 아니면, 우리가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인권 복지 국가의 ‘상’에 턱없이 못 미치는 무수한 객관적이고 명백한 증거들을 떠올리겠지요. 거기에 만족하고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을 이어나갈 필요를 느끼지 않을 텐데, 무얼 그리 걱정하는 걸까요.
사실 신은미씨의 여행기를 읽어보면 부유한 나라의 여행자에게도 인상 깊었던 어떤 편린들, 시민.정치적 권리보다는 사회.경제적 권리를 중요시했던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흔적들이 드러나기보다는, 대체로 가난하지만 대차고 정이 많은 사람들과의 교감이 주를 이룹니다. 그래서 국가보안법과 소위 종북주의자에 대한 마녀 사냥이 횡행했던 지난 2년간, 별 문제 없이 인터넷 신문에 연재 되고 책으로 나오고 강연도 이루어졌겠지요. 지난 11월 21일, 조선일보가 두 사람의 토크 콘서트를 <서울 한복판 ‘종북 토크쇼’>라고 지목하며 선동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공교롭게도 ‘종북 게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반공 교회들이 성소수자 차별 금지에 반대하며 서울인권시민헌장 공청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등, 또다시 소란을 피우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경찰은 신은미씨와 황선씨에 대한 내사에 착수하고, 종편방송들은 두 사람이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묘사했다’며 매일 매일 하루 종일 왜곡 선동을 쏟아내는 와중에, 그 말을 그대로 믿은 고등학생이 일을 저질렀습니다. 경찰은 피해자들을 압수수색하고 출국 정지와 함께 국가보안법 수사를 개시했으며, 종편방송들은 책임을 느끼기는커녕 환호성과 함께 나발을 있는 대로 불어대고 있습니다. 판이 마련되었으니, 어서 빨리 본론을 시작하라는 듯이.
음산한 국가 기구들의 비호를 받으며 국가 수반의 자리에 오른 박근혜씨는, 이번 주 월요일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두 사람의 토크 콘서트를 ‘종북 콘서트’라 규정하며 이 국면을 결정적인 것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촛불집회와 미네르바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공안 검사 출신 박 모가 이끄는 헌법재판소는, 발 빠르게도 진보당에 대한 해산 여부 결정을 바로 내일 공개하겠다고 합니다.
지난 몇 년 간 차근 차근 반복해서 ‘종북정당’이라는 딱지가 붙어온 진보당은, 흔히 특정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이들의 당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TV와 신문이 열심히 비추어 대는 그 얼굴들이 진보당을 대표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요. 그러나 TV에 박근혜와 이건희의 얼굴만 나온다고 해서 이 땅이 그들의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가 ‘북한’이란 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TV에서 봤던 북의 최고지도자들부터 머리 속에 떠올리는 게 실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것처럼, 진보당을 특정 정파의 당으로 생각하는 건 사실의 일부를 반영했겠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누락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강제 해산이라는 제단 위에 올려져 있는 이 정치결사체는, 온전히 노동자 농민의 힘으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독재자가 만들지도 않았고, 가진 자들의 돈으로 운영되지도 않았습니다. 남한 사회에서 노동자 농민들이 합법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세웠던 정치적 결사체입니다. 저는 우리가 말과는 달리 실제로는 이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2011년 소위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논란 당시, ‘시민적’, ‘진보적’, ‘민주적’ 상식들은 경선에서 나타난 대량의 IP 중복 투표를 총체적 부정의 증거 중 하나로 확신하고 몰아세웠지만, 그게 실은 공장과 노동조합/농민회 사무실에서 이루어진 노동자 농민 투표의 물리적 특성이었음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요.
이 노동자 농민 당원들은 부정 경선 논란 때도, 내란 음모 조작 사건 때도, 수시로 국가 기구에게 그 신상을 털려왔습니다. 아무도 이를 주목하지도, 문제 삼지도 않았습니다. 국가는 이들을 ‘종북 세력’의 구성원, 적극적 동조자, 방조자 따위의 기준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들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이 ‘종북주의자’로 지목되어 TV에 나오는 이들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바라보는 방식과 정확히 같습니다.
우리 사회의 민중들이 만들어낸 정치적 결사체에 대한 이런 공격은, 우리 사회의 평화적.경제적.사회적 권리에 드리운 암울한 그림자를 배경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북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 훈련이 일 년 내내 벌어지고 있지요. 매년 100만명의 정규직과 100만명의 비정규직이 해고되고 있고, 대법원은 노동자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판결을 잇따라 내리고 있습니다. 어렵게 버텨온 농민들은 기어이 벼랑 끝에서 떠밀려지는 중입니다. 우리 사회의 48%는 연 소득 1100만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고발이 나오는 가운데, 차라리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그런데 우리 사회의 그 누구도 미래를 기약하지 못하는 이 와중에도, 어떤 집안의 삼남매는 하룻밤 사이 3조가 넘는 재산을 불렸습니다. 저들은 앞으로도 더 밀어붙일 모양입니다.
이런 극단적 불평등과 불의가 관철되는 우리 사회에서, ‘상식’을 대표하는 지위를 보유한 이들은 극단적 좌우 모두에 반대한다고 합니다. ‘합리적’ 진보와 보수를 표방하는 이들은 한 몸이 되어 ‘위험한 망상을 꿈꾸는 종북주의자’들을 비난하고, 다른 한편으론 ‘인생에 처음으로 목표가 생겼다’며 눈 먼 행동을 한 고등학생을 엄벌해야 한다고 합니다. 북한과 그들을 추종한다고 의심받는 무리, 또 그들에 대한 위로부터의 국가 폭력과 아래로부터의 눈 먼 사적 폭력, 그리고 이들을 부추기는 세력들까지 모두 반대한다는 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말들은, 실제로는 누구의 불안을 반영한 말이고, 그래서 누구를 내치라는 말일까요. 우린 위험한 그들과는 다르다고 선을 그으며, 또 우리를 위험한 그들로부터 보호해달라고 은밀하게 호소하고 있는 대상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던가요.
이 기회에 위험 분자들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오른쪽으로부터의 노골적 선동과, 백색 테러가 등장했다는 왼쪽으로부터의 호들갑만 요란한 가운데, 정작 양 쪽의 대리전을 치러야 했던 이들의 목소리와 말 못할 불안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북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기준과 방식을 강요하지 말고 존중하며 함께 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간곡한 말과, 어린 나이에 어마어마한 범죄를 저지르도록 부추겨진 어떤 절망을 알아 보고 알아 듣고 응답하려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한쪽에선 국가보안법의 철퇴를, 다른 쪽에선 테러에 대한 단호하고 엄중한 처벌을 국가에게 요구하는 목소리가 선명합니다. 그러나 정작 이 모든 선동과 테러와 공포를 조장하며 육중한 존재감을 키워가는 것의 정체와 목적은 무엇이던가요. 우리가 정말로 극단의 시대를 바라지 않는다면, 학생에게 선처를 바란다던 황선씨의 말을 곱씹어 볼 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