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 대책협의회는 지난 6월 15일 서울역 광장과 23일 목동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각각 집회를 가졌다. 이 때 우리는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벌금제도는 민족차별 정책이다' '저임금으로 노예같이 일시키고 그나마 번 돈 벌금으로 다 빼앗는다' '월급 못 받은 것도 서러운데, 집에 가지 못하게 하는 벌금제도는 IMF 보다 더 무섭다' '외국인노동자 실직자 갈곳 없다, 서울역에서 노숙하고 용산 역에서 밥 먹자'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 보내 주세요' 등의 주장을 한 바 있다.
특히 23일 출입국관리소 앞의 집회에서는 벌금 때문에 집에 가지 못하는 3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진해서 출국신고를 했지만 이들은 오히려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전원 외국인노동자 보호소에 수감되고 말았다.
그러던 지난 6월 26일 한 외국인노동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출입국관리소 보호소 직원들이 '왜 데모를 했느냐?' 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모아 놓고 '8시간 동안 무릎을 꿇게 하는 기합을 주었다'는 제보와, 보호소에 있다가 본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 노동자가 '보호소 내에서 곤봉으로 맞았다'는 제보였다.
다음날, 23일 집회 참가자중 아직 출국을 못하고 수감되어 있는 4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면담하여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이때 보호소 내에서 폭행을 당한 외국인노동자가 자신이 기록하여둔 메모를 보여주었다.
"23일 안산에서 점심을 먹고 12시에 출발하였으나 양천구청에서 출입국관리소 직원에게 1시 45분경 체포되었다. 오후 2시경 봉고차에 실려 목동으로 잡혀갔다. 잡혀가는 동안 경찰이 차안에서 심한 말로 기초 조사를 하였다. 나와 친구는 수갑에 채워졌다. 2시10분에 조사실에서 1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후 3시경 보호소에 수감되었다. 수감된 방은 6호실이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들어와 기합을 주었다. 무릎을 꿇게 하고 손을 머리에 깍지낀 상태로 1시간 동안 있었다. 4시 20분경이 되자 자율귀환 보장을 주장하며 자진 출국 신고를 마친 동료 외국인노동자 여러 사람이 새로 들어왔다. 방글라데시, 네팔, 중국, 몽골, 페루 사람 등 모두 21명이었다. 우리는 다시 5호실로 방을 옮겼고 그곳에서 다시 8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머리에 손깍지를 끼는 기합을 받았다. 21명이 수감된 5호실은 3미터 정도 크기로서 21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기에는 너무 비좁았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앉아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27일 오전에 또 연락이 왔다.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로부터 "왜 어제 목사님께 보호소 내의 일을 이야기를 했느냐"고 심한 욕설과 꾸지람을 들었다는 것이다. 수감되어 있는 외국인노동자의 짐과 예약된 비행기표를 전달하고자 보호소를 방문한 우리 일행 역시 보호소 입구에서 짐승처럼 내쫓김을 당했다. 이렇듯 한국 사람에게도 마구잡이로 대하는 보호소 사람들이라면 보호소 내의 외국인노동자들은 얼마나 함부로 대하고 있겠는가를 직감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지난 96년 4월 28일 부산에서 붙잡힌 외국인노동자가 구치소로 이송된 후 96년 5월-6월 동안 15개국 100명의 외국인노동자를 대상으로 보호소 혹은 구치소 내에서의 생활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적이 있었다. 그 결과, "당신은 회사, 구치소 안에서 한국 사람에게 맞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90%가 "맞았다"고 답변했다. 또 맞은 경험이 있는 사람 가운데 70%가 본국으로 돌아가서 한국인을 해치겠다고 답했으며, 총으로 쏘겠다고 답한 사람이 있었다. "구치소 안에서 얼마나 있었나?"는 질문에 1-2개월이 80%, 1-3주가 15%, 2개월 이상이 5%였고, "한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외국인들 눈물 때문에 이 나라에 저주가 임하게 될 것이다"는 답변이 60%, "한국인들은 돈이 있어도 언제나 세상에 살 동안 고생할 것이다"는 대답이 30%,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 10%로 나타났다.
한국에 올 때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오지만 한국에서 나갈 때는 한국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다. 외국인노동자 보호소의 외국인노동자들은 결코 흉악범이나 파렴치범이 아니다. 잡힌 과정을 보면, 일하다 회사 안에서 잡힌 경우가 80%, 유흥가에서 6%, 기숙사에서 잘 때 8%, 여행중 3%, 역전, 버스 정류장에서 잡힌 경우가 3%로서 대부분 한국에서 성실히 일하며 돈을 벌고자 했던 외국인노동자였다.
8시간을 무릎꿇고 손에 깍지를 낀 채 모욕을 당한 외국인노동자는 복종이 아닌 복수의 마음을 불태우고 있었음을, 곤봉으로 맞은 외국인노동자의 매 맞음은 가슴으로 흘리는 피흘림의 저항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고작 4명이 잘 수 있는 작은 방에 21명을 몰아 넣어 쭈그려 앉아 밤을 세우게 한 보호소는 차라리 삼청교육대의 짐승 우리였다. 외국인노동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폭력 속에 민족적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책임지고 정부는 서울출입국 관리소 소장과, 보호소 과장 및 폭행 관계자를 처벌해야만 할 것이다.
박천응(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