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는 ‘볕이 바로 드는 땅’을 일컫는다. 사회복지시설은 그늘진 음지에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바로 ‘양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양지마을’은 가장 적합한 이름일 것이다. 충남 연기군의 농촌 마을 한 산자락을 차지한 그곳은 지형적으로는 양지임에 틀림없었다.
우리가 양지마을에 ‘쳐들어간’ 것도 벌써 열흘이 넘었다. 언론들이 이 사건을 일제히 보도했고, 보건복지부가 서둘러 감사에 착수했으며, 검경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정도면 사회적인 파장도 일으켰으니 일이 제대로 될 것을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들려오는 양지마을의 소식에는 우려가 앞선다.
노재중 이사장은 퇴소자들에게 “오늘 여러분들이 나가지만, 저를 다시 만날 사람이 있을 겁니다.…말을 막하면 안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평소에는 안하무인으로 나이를 가리지 않고 반말지꺼리에 폭행까지도 서슴치 않았던 그가 부드럽게 퇴소자들에게 했다는 이 말은 분명 협박이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세운 노예왕국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기만 하다. 그는 아마 재기를 꿈꾸고 있는 지도 모른다. 87년 부산형제 복지원과 함께 문제가 되었던 성지원의 원장으로 한때 구속되었던 경력도 있지만, 그 위기를 다시 발전의 계기로 삼아 누구도 쉽게 허물 수 없는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지 않은가. 더욱이 요즘은 부랑인들이 도처에 널린 때가 아닌가.
아직도 협박을 일삼는 이사장
지금 우리 사무실에는 양지마을 퇴소자들이 매일 찾아온다. 7월 16일 조사단과 함께 나왔던 이들도 있지만, 보건복지부 감사 이후 새로 퇴소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기자들에게 물어물어 우리 전화번호를 알았고, 충남에서 먼 길을 달려오는 것이다. 그들은 23일 원생들끼리 농성을 했고, 그 뒤 퇴소를 희망하는 원생들을 단계적으로 퇴소시킨다는 얘기도 전해준다. 그러면서 ‘왜 아직도 노재중(이사장) 같은 놈이 구속이 안되냐’며 분노하기도 하고, 양지마을에서 ‘구해준’ 우리에게 무한한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들은 불안하다. 짧게는 몇개월이지만, 5년, 10년의 세월 동안 철저하게 파괴된 인간의 모습을 되찾는 길이 쉽지만은 않은 듯싶다. 그렇게 만류해도 술 한잔 걸치고 와서는 한풀이다. 10년 일했어도 받아 나온 돈이 백만원을 겨우 넘거나, 채 몇십만원도 안되는 돈을 보여주며, 이게 10년 노동의 댓가냐며 따지고 든다.
“우리 보상은 어떻게 됩니까? 돈을 받을 수는 있습니까? 우리가 받은 고통은, 썩어버린 정신은, 우리의 청춘은 돈으로 보상이 됩니까?”
그럴 것이다. 가족과 생이별하고, 절해고도, 유형 무형의 공포 속에서 생존적 본능으로 목숨을 부지해왔던 이들-이러다가는 가족 한번 못 보고, 개미고개 귀신이 되는 것은 아닌지 등-에게 세상은 너무도 험하게 변했지 않은가. 절치부심, 십년을 한결같이 인간세상으로의 탈출만을 꿈꾸었던 이들에게 복수보다도 이제는 세상 사는 일이 갑갑한 상황이다. 더러는 가족들 연락도 되고, 반갑게 이산가족 상봉을 하기도 하지만, 부모님이 돌아시기도 했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연락이 도무지 닿지 않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런 절망의 상황에 다시 양지마을 퇴소자들은 서 있다. 그들이 기를 쓰고 새 삶을 살기 위해 애쓴다 해도 피말리는 경쟁 속에서도 퇴출당하는 실업자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이제는 정말 부랑인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이들의 탓일까.
부랑인들은 차별당해 싸다?
양지마을 퇴소자들의 분노와 무력감에 점령(?)당한 사무실에서 우리는 다시 제2의 양지마을에 대해서 제보를 듣는다. 00동네, 00마을 하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시설들에서 어떤 인권유린행위가 자행되고 있는지 그들은 전화로 하소연한다. 도대체 사회복지를 내세우는 얼마나 많은 시설들에서 양지마을과 같이 사람을 노예로 삼고, 그 노예의 머릿수로 정부지원금을 받아내고, 노예노동의 착취로 얼마나 많은 이윤을 뽑아내는지, 그리고 그 돈들이 공무원들과 공권력과 정치인들의 손으로 흘러들어가는지 누가 알 것인가. 해마다 어김없이 한두건 이상의 시설들의 문제가 파헤쳐졌지만, 성지원 원장이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여 족벌체제의 공고한 노예왕국을 건설했던 것처럼 그렇게 사회복지의 미명 아래 곳곳의 사회복지시설에서 노예로 사육당하는지 모를 일이다.
노예제도는 법률 속에서는 폐지되었지만, 20세기말 지금도 노예제도가 사회복지사업가와 공무원들, 정치인들의 유착 속에서 질기디질긴 생명력을 이어간다는 점을 양지마을은 확연히 입증하고 있다. 거기에는 부랑인들이나 정신질환자와 같은 사회복지시설 수용 대상들이 차별당해도 싸다는 반인권의식이 그 연원을 이룬다. 이 점을 자각할 때 곳곳의 양지마을들은 다시 어둠 속에 묻히지 않고 햇볕이 바로 드는 땅으로 거듭 날 것이다.
* 오늘 mbc TV 「PD수첩」은 양지마을과 그 속에 갇혀 울부짖는 인간들의 모습을 방영한다.
박래군(인권운동사랑방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