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529호실 사건’을 통해 현 정권 들어 처음으로 ‘안기부 사찰’ 문제가 쟁점화되고 있다. 여야가 이번 사건을 각각 ‘국기문란’ 또는 ‘정치사찰’이라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는 가운데, 재야와 시민사회계에서는 “안기부의 정치사찰을 중단시키고 안기부 개혁을 시작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들을 내놓고 있다.
또 이 사건을 단지 ‘국기문란 행위’로 몰고 가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전북평화와인권연대는 “정보기관의 사찰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오히려 ‘잘못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며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찰 중단을 약속하고 국민에게 정중히 사과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박연철 변호사는 “3권분립 원칙에 입각한 의회의 독립성, 자주성 원칙에서 볼 때 국회 내에 안기부 사무실을 설치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수집한 정보는 정치사찰의 증거”라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한나라당도 종전에 자신들이 해온 행태에 비춰볼 때 앞뒤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게 분명하지만, 정략적 이용 여부를 떠나 이번 기회를 안기부의 정치사찰 관행을 뿌리뽑고 안기부 활동의 기준을 설정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529호 사건을 안기부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은 잇따르고 있다. 김두수 국민승리21 부대변인은 “이번 기회에 안기부법을 개정해 안기부의 수사권을 없애고, 국내정치사찰을 금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형태 변호사(천주교인권위 위원장)도 “안기부의 정보수집 범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기부 개혁문제와 관련, 지난 97년 2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움에서는 안기부의 집중된 권한을 대폭 분산시킬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곽노현 교수(방송대 법학과)는 △정보수집권과 수사권의 분리 △국내와 국외 정보수집권의 분리 △국가보안법 7조에 관한 정보수집권 및 수사권의 검찰 이관 △안기부 직원의 직권남용죄와 정치관여죄에 관한 수사의 검찰 이관 등을 제안했다.
한편, ‘안기부 사찰’의 쟁점화가 자칫 정략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으며, 더불어 ‘529호’ 사건을 이유로 재벌구조조정이나 실업자문제 등과 같은 민생현안 처리가 지연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참여연대는 6일 여야 3당 총재에게 보내는 의견서를 통해 “정치사찰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이 시급한 민생현안의 처리나 경제청문회 등 산적한 국가개혁과제의 해결을 지연시키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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