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권리 등 82개 결의안 채택
제55차 유엔 인권위원회가 30일 82개의 결의안을 통과시키며 6주간의 긴 일정에 막을 내렸다.
정부 대표들로 이뤄진 인권위원회의 속성상 자국의 이해관계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한계는 이번 회기에서도 확인되었다.
특히 회의 기간 내내 폭격과 난민의 행렬이 계속된 유고 사태를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인권위원회의 모습은 민간 인권단체들의 회의적인 시각을 더욱 부추기는 이유가 됐다.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 중 하나는 중국에 대한 결의안 제출이었다. 하지만 이는 중국의 불처리 동의안(no action motion)이 다수 투표로 받아들여짐에 따라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찬성 22, 반대 17, 기권 14. 이 같은 결과는 결의안을 제출한 미국에 대한 반발감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중국 정부를 상대로 기본적 자유 보장을 요구하며 20여 일째 계속되고 있는 티벳인들의 단식농성은 이같은 투표 결과를 반길 수 없게 만들었다.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침해한 이들에 대한 불처벌'의 문제는 또 하나의 논쟁거리를 제공했다.
이 결의안은 독일, 미국 등이 법적 개념화의 어려움을 들어 반대의 입장을 밝힘에 따라 논쟁 끝에 투표를 거쳐 통과됐다. 이는 '불처벌'에 대한 개념의 확장과 더불어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기준 설정에 관한 연구를 촉진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이어 '지구화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결의안도 통과됐다. 이 결의안은 "지구화는 단지 경제활동만이 아니라 사회․정치․환경․문화 그리고 법적 변화를 동반한다"며 지구화의 혜택을 증진시키면서 그 악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다자간 기구의 강화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덧붙여 결의안은 인권소위에 '지구화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종합적인 연구보고서를 다음 회기까지 제출할 것을 요청함에 따라 내년 제56차 인권위원회에서는 '인권신장과 보호'라는 의제 아래 이 문제가 정식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미국, 사사건건 반대표
◎…사형제도 폐지에 관한 결의안 또한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독일이 제출한 이 결의안은 시민․정치적 권리 조약과 아동권 조약에 따라 임신한 여성과 청소년은 절대 사형선고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여전히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에게 장기적으로 사형제도의 중지를 권고하고 있다.
이는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들이 요구하는 바와 일치하는 것으로 18세 이하의 청소년에게도 사형선고를 내리는 미국을 겨냥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은 결의안을 투표에 부칠 것을 요청하며 "대다수의 국민이 원하고 있기 때문에 사형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반대의 뜻을 밝혔다.
결국 이 결의안은 찬성 27, 반대 13, 기권 13으로 통과됐다. 하지만 투표가 끝난 후,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일본 등 여러 국가들은 공동 발언문을 통해 "사형제도가 폐지돼야 한다는 여론이 아직 국제사회에 무르익지 않았고 사형제도의 시행 여부는 각 국가에서 결정할 사항"이라며 반발했다.
한국 정부는 반대표를 던졌다.
◎…인권위원회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와 관련해 8개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들 결의안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은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외채 탕감 △인권과 경제봉쇄정책 △유해 물질의 불법적 운반과 폐기 △구조조정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 등이 논의될 때는 반대의 입장을 강하게 피력해 인권에 대한 이중적 시각을 보였다.
이들 반대 주장의 핵심적 근거는 ①인권위원회는 이 같은 문제를 다룰 적절한 공간이 아니다 ②경제․사회․문화적 권리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 것은 국가 내부 정책의 실패에 기인한다 ③인권 향유의 주체는 개인인데 이들 문제와 관련해서는 인권을 침해당하는 개인을 정의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이들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8개의 결의안 모두는 투표를 거쳐 통과됐다. 하지만 세계경제질서를 좌우하는 강대국들 대부분이 반대 입장을 표명해 실제 결의안들이 어떤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