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은 교도관이 고소장접수를 거부한 것에 대해 국가가 그 책임을 지도록 했다. 소송을 제기한 김석진 씨는 96년 마산교도소에서 깡패 재소자들에게 몰매를 맞았으나, 오히려 수갑이 채워지고 쇠사슬에 묶인 채 2개월간 독방에 쳐박혔다. 또 고소하려고 했다가 교도관들에게 오히려 폭행․고문을 당했다. 폭행-고소방해-고문․회유-징벌-이감-출소 후 소송. 이는 교도소의 인간이기를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처우에 대해 저항하는 사람들이 ‘교과서’처럼 따르는 ‘절차’다. 김 씨도 이 ‘절차’를 그대로 밟아야 했다.
출소한 김 씨가 98년에 교도관 김정섭, 김근섭을 처벌하라는 요구에 대해 검찰은 기각결정을 했으며, 이어 부산고법에 낸 재정신청도 무혐의 처리됐다. 부산고법은 관구계장 김광노의 고소방해에 대해서도 “위법성은 인정되나 20여 년 간 성실히 근무한 점을 인정”해 소추를 유예했다. 또 부산고법은 장기간의 계구사용이 위법이라는 대법원의 판례도 무시한 채 “증거도 없고, 설령 50일간 사용했다고 해도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98년 형사소송과 함께 제기한 손배소송에 대해 2년을 허송세월 하던 대전지법은 걸레 같은 부산고법의 재정신청 기각결정문을 거머쥔 채 교도관의 가혹행위, 계구사용은 무시하고 고소방해만을 인정했다. 항소심도 결과는 같았다. 모두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였다. 주위의 ‘포기’권유로 남몰래 소송을 진행하던 김 씨는 절망감으로 상고도 포기했다.
누가 김석진 씨에게 상고를 포기하게 했는가. 교정기관이 제출한 허위증거와 거짓증언의 뒤에 숨은 채, 교도관의 인권유린에는 애써 눈감는 법원이다. 김 씨 재판에서도 ‘증거불충분’이 운위됐으며, 지난 해 유득형 씨 재판에서도 감호자들의 증언은 물론이고 가혹행위를 입증할 수 있는 교도소 의무과 진료기록도 배척됐다. 단지 교도관의 집필방해에 대해서만 배상판결을 내렸다. 교도관의 자백이 없는 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호소하는 출소자들의 증언은 말짱 ‘꽝’이라는 것이다. ‘돈 없고 빽 없는 놈’들은 믿을 수 없고, 가해자들이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제출한 ‘증거’에만 관심을 갖는 사법기관의 나태함과 비겁함이 김 씨를 절망에 빠지게 한 것이다.
우리는 ‘인권의 보루’라고 하는 사법부가 일제시대를 거치며 단 한번도 단죄되지 않은 교도관들의 고문관행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오히려 방조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재소자들에게 인간이기를 포기할 것을 강요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상이 낱낱이 기록되고 있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 또 사법부에 요구한다. ‘최후의 인권보루’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