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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집회 및 시위의 자유, 현 주소를 진단한다 ②

집회금지조항, “걸면 걸린다”


집회 및 시위의 ‘세계’에서는 경찰의 해석과 방침이 곧 법이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자체가 각종 집회금지조항을 규정해 놓아, 오히려 경찰에게 집회 및 시위를 금지․제한․해산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경찰의 저급한 인권의식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갈수록 위축시켜, 이 나라를 ‘집회금지 공화국’으로 만들고 있다.


허울뿐인 신고제, 사실상 허가제

올해 통일연대가 ‘8․15 통일대축전’ 행사를 집회신고 했을 때, 경찰은 이를 허가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상당히 고심했다고 한다. 당시까지 경찰은 폭력시위 전력을 이유로 한총련과 관련된 모든 집회를 불허해 왔는데, 집회신고를 낸 통일연대에는 한총련이 가입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경찰은 ‘8․15 통일대축전’ 행사를 원천 봉쇄하거나 불허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대해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그동안 분리 개최돼 온 민화협 행사에 한총련이 처음으로 참여하는 데다 통일 관련 행사를 놓고 학생과 경찰이 충돌하는 모습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이렇게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현행 집시법이 신고제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경찰의 허락이 있어야’ 집회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이때 경찰의 허락은 객관적인 법률에 근거하기보다는, ‘한총련이 민화협 행사에 처음으로 참여하기로 한 사실’과 ‘학생과 경찰이 충돌하는 모습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의존했다. 이는 역으로 당시 경찰이 판단을 달리했다면, ‘8․15 통일대축전’ 행사는 불허될 수도 있었다는 뜻. 실제 한총련 단독으로 계획했던 8월 14일 용산 미8군 앞 집회는 경찰의 판단에 따라 금지됐다.


걸핏하면 ‘폭력시위 전력’ 악용

집시법 제5조 1항 2호는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하고 있다. 현 정부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을 잠재울 필요가 있을 때, 경찰은 폭력시위 전력을 내세우며 이 조항을 악용해 왔다.

올해 2월 21일부터 약 한달 보름 동안 주최자에 상관없이 부평지역에서는 대우차와 관련된 집회가 모두 불허됐다. 전날 화염병 및 폭력시위가 있었다는 이유로, 이른바 ‘폭력시위우려 조항’을 발동한 것. 마찬가지로 지난해 ‘민주노총 3대 요구 쟁취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5/29-6/2)’ 등 민주노총 주최 집회들도 폭력시위우려 조항이 선택적으로 적용됐다. 민주노총이나 소속 연맹 주최의 집회에서 폭력행위가 있었다는 이유.

95년에는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가 서울역광장에서 ‘세모녀 폭행미군 소환 및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위한 시민대회(2/18)’를 집회 신고했다. 이때 경찰은 “위 집회 참가인원 중 60-70%를 차지하는 한총련이 94년도에 총 27회의 폭력시위를 주도하였다”며 금지 통고했다.

하지만,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는 이에 불복해 법원에 ‘집회금지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냈고, 서울고등법원은 같은 해 5월 “원고의 회원단체인 한총련이 종전에 집회에서 수차 폭력행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집회에서 폭력행사가 있을 개연성이 명백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을 내렸다. 경찰의 자의적인 법 집행에 대해 일침을 가한 것.

모호한 조항도 경찰 입맛대로어렵사리 집회허가가 떨어지더라도, 집회 및 시위는 경찰의 자의적 법 해석으로 방해받기 십상이다. 지난 6월 제2차 민중대회 때 경찰은 대통령 캐리커쳐 만장을 “사전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제 철거했다. 이어 경찰은 7월 3일 전교조 교사들이 신고된 집회종료 시간을 넘겼다는 이유로, 건설운송노조 조합원들은 신고된 인원보다 40여 명이 더 참가했다는 이유로 각각 연행했다.

물론 집시법 제14조는,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가 “신고한 목적․일시․장소․방법 등 그 범위를 ‘현저히’ 일탈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연 어디까지를 “현저히 일탈한 행위”로 보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런 물음에 대해, 집회업무를 담당하는 종로경찰서 정보과 관계자는 “기자들과의 접촉은 홍보업무를 담당하는 경무과 책임”이라며, 질문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경무과 홍보업무 담당자는 “집회는 정보과 소관”이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결국 애매한 조항에 대한 경찰의 입장을 속 시원히 들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집회 및 시위의 세계에 있어서 경찰은 언제나 일방적이다. 법에 대한 복종과 법 집행에 대한 순종만을 강요하지만, 정작 법 집행에 대한 문제제기는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 따라서 집시법 조항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일단 눈에 거슬리는 집회와 시위를 금지․제한하고 보는 경찰의 관행은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