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금매춘·유착비리 철저히 조사해야
"죽자고 여기까지 왔냐!" 죽은 이를 부르는 유가족들의 흐느낌이 차가운 회색빛 공기를 갈랐다. 새까 맣게 타버린 군산시 개복동 성매매 업소 '대가' 입구엔 지금도 깨진 유리조각과 슬리퍼 한 짝이 나뒹굴고 있었다. 8일 아침 9시 14명 희생자들의 합동장례식은 이 참혹한 화재현장 앞에서 전국 에서 참석한 여성·사회단체 회원들과 유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미로 같은 복도를 지나, 굴 같은 쪽방에서 소리소리 질러도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지. 그곳은 감옥 아닌 감옥. 나는 사육되는 동물이 아니야, 노예가 아니야, 화재가 아니더라도 난 이미 질식당했어."
안일순 씨의 추모시가 낭송되자 유족들은 오열을 토했다. 실제 성매매 업소 '대가'는 커다란 굴과 같았다. 듣던 대로 문은 밖에서 잠글 수 있도록 돼 있었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작은 방들은 모두 창문을 합판으로 막아 햇빛이 들지 않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 끝엔 철문이 우두커니 서 있는데, 이 문 앞에서 14명의 여성들은 서로 엉긴 채 죽어갔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이경숙 공동상임대표는 추모사에서 "사람이 사람을 사고 팔고, 여성들이 빚더미와 감시 속에서 매춘을 강요당하는 것, 이것이 현대판 노예가 아니면 무엇이겠냐"며 "이제는 더 이상 희생자를 만들지 말자"고 당부했다. 죽은 이의 자매인 한 여성은 "세상 사람들은 당신들을 보며 윤락녀라 업신여기며 희롱했고, 필요악이라며 노예매춘을 정당화했다"며 고인을 보내는 글을 읽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이어 "당신들을 죽인 것은 인신매매·협박·갈취를 일삼는 성매매 알선업자들과 불법 성매매를 눈감아준 부패공무원들"이라며 "감금 매춘과 관계기관들의 유착비리에 대해 정직한 수사를 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장례식을 지켜보던 새움터의 김현선 대표는 "공무원, 경찰, 소방서 등 공무원과 업주 간의 유착비리에 대해서 전북지방경찰청이 수사를 한다고 하는데, 과연 제대로 될지 의문"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한국 여성단체연합의 최문성미 조직국장은 "2000년 군산대명동 사건에서 군산경찰서와 전북지방경찰청은 신뢰를 잃었다"며 "경찰청장 하에 특별수사대를 설치하고 적극 수사에 나서 철저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북지방경찰청은 이번 사건과 관련, 공무원 비리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나 업주와의 유착관계나 상납 고리에 대해서는 별 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한편, 오후 2시에는 서울 서대문의 경찰청 앞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서울지역 노제가 여성단체 회원들과 민중연대 소속 단체 회원들 1백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날 경찰은 서대문 지하철역의 출구를 봉쇄해 나가는 사람들을 선별하고 경찰청 접근을 막는 등 노제를 방해해 참석자들의 비난을 샀다. 노제 참석자들은 "성매매는 일시적인 단속이나 쇠창살 제거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여성들을 감금, 착취함으로써 이윤을 얻는 성매매 알선업자와 이를 방조하는 각종 유착고리를 끊을 수 있도록 성매매방지법을 즉각 제정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