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인종청소, 삼청교육 비극은 진행형
80년 8월 4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전두환 상임위원장의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 발표와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계엄포고령 13호' 발표. 그로부터 약 넉 달 간 '삼청5호 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검거된 사람은 총 6만7백55명이다.
그 가운데 3천2백52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됐으며, 3만9천7백86명이 25개 군부대로 분산 수용돼 '죽음의 순화교육'을 받았다. 영장도 없는 체포와 구금, 강제노역과 구타, 거기다 살인에 이르기까지, 삼청교육이 보여준 잔혹한 인권유린의 실상은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89년 1월 20일 국방부 공식발표에 따르면, 부대 내에서의 사망자가 52명,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가 3백97명, 행방불명자가 4명, 심각한 정신장애를 겪는 등 상해자가 2천6백78명에 달한다. 이는 물론 국방부에 신고된 숫자일 뿐이다.
외면당한 피해자, 가로막힌 국가배상
그러나 이 잔혹한 인권유린의 피해자들은 20년이 지나도록 어떠한 구제도 받지 못했다. 정부도, 국회도 항상 그들을 외면했다.
한때 정부는 피해보상을 약속하기도 했다. 88년 11월 노태우 대통령은 "광주민주화운동, 공직자 해직, 삼청교육대 사건 등에 대해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을 하겠다"는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사기였다. 담화에 이어 국방부가 피해신고를 접수했지만 그뿐이었다. 삼청교육 문제의 해결을 92년 대통령선거 당시 공약의 하나로까지 내걸었던 현 김대중 대통령 역시 지금 아무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회도 다를 것이 없었다. 13, 14, 15대 국회에 각각 삼청교육 피해배상에 관한 법률안이 제출됐지만, 심의지연과 무성의로 법안은 늘 자동 폐기됐다. 16대 국회에서도 입법의지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이철호 교수(여수공업대 경찰행정학)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 없이 피해배상만 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삼청교육의 진상이 밝혀지고 그에 상응한 처벌이 있어야만 배상문제가 풀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앞에는 공소시효의 벽이 놓여 있었다.
공소시효의 포로, 검찰․법원․헌재
검찰과 사법부는 오로지 '공소시효의 논리'만을 떠받들며, 삼청교육 문제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회피했다. 삼청교육 피해자 이택승 씨는 89년 12월 최규하, 전두환, 이희성, 김만기(당시 국보위 정화분과위원장) 등을 불법체포, 감금, 폭행 및 가혹행위, 살인 및 살인교사죄로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이 사건은 무려 3년이 지난 뒤인 92년 12월 서울지검으로부터 "공소권 없음" 결정을 받는다. 이에 이씨는 항고, 재항고, 재정신청까지 해 봤으나, 93년 4월 법원은 "직권남용, 불법체포 감금, 폭행 가혹행위 죄는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고, 살인 및 살인교사죄는 재정신청의 대상이 아니"라며 검찰의 결정에 맞장구를 쳤다(서울고등법원 93초12 재정신청). 대법원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씨는 95년 재차 검찰에 고소장을 내봤으나 허사였고, 그해 12월 헌법소원을 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에서 주목할만한 해석이 나왔다. '전두환의 재임기간을 고려할 때 사건의 공소시효는 95년 7월 18일에 완성'된다는 것이다.(95헌마365) 헌법재판소의 해석에 따르면 '직권남용, 불법체포 감금, 폭행 가혹행위 죄는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는 이전 검찰과 법원의 판단은 모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씨가 헌법소원을 청구한 시점이 …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며 사건을 기각해 버렸다. 공소시효를 넘겨가며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검찰과 법원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고스란히 피해자가 져야 했다.
끝나지 않은 국가범죄, 삼청교육
국제법상 '반인도적 범죄'란 △민간인을 대상으로 △조직적이거나 광범위하게 저질러지고 △일반적인 범죄보다 비난가능성이 높은 범죄를 의미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삼청교육은 '반인도적 범죄'의 전형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가 수만명에 달하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조직적인 계획과 지원 아래, 강제노역과 구타살인 등 인류사회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극악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인도적 범죄'의 처벌에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편적 원칙이다.
헌데, 주목할만한 사실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삼청교육의 종료를 선언한 일이 없다는 점이다. 5공 정권이 삼청교육 수료생들에게 나눠준 '수료증'의 뒷면에는 "본 수료증은 항시 휴대하여야 한다. 본 교육 수료자가 재범시는 엄중 처단된다"고 적혀 있다. 삼청교육을 근거로 한 공권력의 감시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종료되지 않은 사건인 삼청교육에 공소시효를 적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삼청교육 피해자들은 2001년 10월 다시 한번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검찰에선 별 소식이 없다. 지난 2월 "사안이 복잡해 수사 중에 있다"는 공문 한 장이 날라왔을 뿐이다.
삼청교육대인권운동연합의 전영순 회장은 "5.18 피해자, 해직공직자 문제는 모두 해결됐는데, 왜 같은 피해자인 우리 문제만 해결이 안되냐"고 따져 묻는다. 이철호 교수는 "삼청교육이 5.18과 다른 점이 있다면, 피해자 대부분이 힘없는 약자라는 사실"이라며, "공소시효 운운할 것이 아니라 5.18 문제와 같이 의지만 있으면 삼청교육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런지 전영순 회장은 "자료도 많이 가져다 줬는데 이번엔 기소하지 않을까요?"라며 아직도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