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노숙자 만들겠다는 건가"
"두 손녀를 키우며 살아가는 한 할머니가 있다. 2년 전 집을 나간 아들이 부양의무자로 분류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상의 수급권자에서 탈락됐다. 임대료가 몇 달째 밀렸을 정도로 가난하지만, 2005년이면 살고 있던 영구임대주택마저도 비워줘야 한다."
서울시는 2000년 12월 '영구임대주택 운영 및 관리 규칙(아래 관리규칙)'을 변경했는데, 영구임대주택 입주자 중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권 탈락자에 대해서는 2회(4년)의 재계약 후 퇴거시킨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89년부터 93년 사이 건설, 공급된 영구임대주택은 당시 생활보호대상자들이 영구적으로 임대할 수 있도록 했다. 당초에는 이후에 수급권에서 탈락해도 보증금이나 임대료를 달리 내는 조건으로 계속 거주할 수 있었다.
서울시, 영구임대주택 관리규칙 변경
하지만 바뀐 관리규칙에 따르면, 수급권 탈락가구는 늦어도 2006년 12월까지는 별 다른 주거 대책이 없어도 영구임대주택을 내놔야 할 딱한 형편에 놓이게 됐다. 이러한 가구의 비율은 서울 지역만 볼 때 영구임대주택 전체 입주가구의 47%에 달한다. 서울시 주택국은 "영구임대주택에 입주하기를 원하는 수급권자들을 원활히 입주시키기 위해서"라고 규칙 개정의 이유를 밝혔다.
이는 더 가난한 사람들을 영구임대주택에 입주시킨다는 측면에서 일견 옳은 방향인 듯 하지만, "이는 주민들의 실태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서종균 전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지적한다. 2002년 1월 한국도시연구소가 서울 노원구 하계9단지의 167가구를 조사한 결과, 수급권에서 탈락한 52가구의 평균 월 소득은 57.6만원으로 산동네나 비닐하우스촌 등 다른 빈곤지역의 소득수준보다 더 낮게 나타났다. 즉, 수급권 탈락가구는 수급권자보다는 좀 낫다 하더라도 여전히 생활형편이 열악해 이들을 퇴거시키는 것은 또 다시 주거빈곤으로 내모는 셈이다.
수급권 탈락가구 월소득 57.6만원
이러한 문제가 지적되자,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수급권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청약 저축에 가입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 역시 현실성이 없다고 말한다. 92년부터 영구임대주택에 살아온 박수만 씨는 "청약저축에 가입한다고 해도 최소 2년, 3백만원을 부어야 추첨자격을 얻게되고, 보증금도 비싸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간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며 "서울시의 조치는 이제 가까스로 정착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노숙자로 만들겠다는 거"라며 답답해했다. 현재 영구임대주택의 주거비는 평균 보증금 3백만원, 월 임대료 5.4만원, 관리비 7만원 수준인데 비
해, 92년부터 93년 사이 건설된 공공임대주택은 보증금이 1천만원 가량 된
다.
뿐만 아니라, 현재 서울시의 방침처럼 영구임대주택에 수급권자들만이 거주하도록 할 때에는 과거부터 지적돼 왔던 슬럼화와 사회적 낙인의 문제가 지속된다고 노원시민모임 주거대책위원회의 양만호 씨는 말했다.
소득에 따라 임대료 차등, 영구임대주택 거주권 보장
이에 영구임대주택 주민들과 관련 시민단체에서는 "일단 영구임대주택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하되, 현재와 같이 소득에 따라 임대료를 달리 내게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나아가 영구임대주택에 들어오지 못한 수급권자 등 주거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공공임대주택의 체계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공공 및 영구임대주택의 주민들이 중심이 돼 지난 달 4월 26일 발족한 (가칭)「전국 공공영구임대 주택연합 창립준비위원회」는 △서울시의 '관리규칙' 변경 철회 △포괄적인 주거빈곤의 해소를 위한 공공임대주택법 제정 등의 운동을 펼쳐나가겠다고 밝혔다. 서 연구원은 "이때 공공임대주택법은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아 건설된 모든 공공․영구․국민임대주택들이 실질적으로 저소득층의 주거 빈곤의 해소와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을 위해 공급, 배분, 관리되도록 하면서 부담능력에 따라 임대료를 차등해서 낼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