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위, 고 한희철 '의문사' 인정
26일 의문사진상규명위(위원장 한상범, 아래 의문사위)는 83년 군에서 사망한 한희철 씨 사인을 자살로 규명했지만, 민주화운동과 관련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인한 사망임을 인정했다.
83년 당시 군복무 중이던 한 씨는 휴가를 나왔다가, 주민등록증 일제 갱신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배 중인 신모 씨 등을 도운 바 있다. 그런데 같은해 12월초 신씨가 보안사에 의해 검거되면서 한씨의 행적이 발각됐고, 한씨는 곧바로 보안사에 연행돼 5일간 집중 조사를 받았다. 조사 후 부대로 복귀한 한씨는 복귀 바로 다음날 경계근무 중 자살했다.
사건 당시 군 당국은 한씨가 현실을 비관한 나머지 자살했다고 발표했으나, 이후 유가족들은 보안부대에 의한 고문으로 타살됐을 가능성 등을 제기해 왔다. 의문사위에 따르면, 한씨는 보안사 조사과정에서 폭행과 고문을 당했고, 입대전 민주화운동을 했던 동료들에 대한 진술을 강요받았다고 한다. 결국 한씨는 어쩔 수 없이 운동권 동료들에 대해 진술한 것을 자책했으며, 또 다시 보안사에 의해 불려가 프락치를 강요받을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의문사위는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보안사의 녹화사업에 대한 고발과 항거의 표현"이라며, 민주화운동과의 관련성을 인정했다. 또 "보안사의 … 감내하기 어려운 가혹행위와 그로 인한 좌절감과 두려움, 죄책감 등에 기인한 것"이라며, 이는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라고 판단했다. 현 의문사법에 따르면, 어떤 사건이 의문사로 인정받기 위해선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사망임을 입증해야 한다.
이에 대해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이은경 사무처장은 "녹화사업을 단행한 보안사에 대해 위법한 공권력으로 규정하고 자살임에도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인정한 것은 전향적"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한희철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가혹행위 전모와 가해자 등을 밝히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의문사위는 87년 청와대 외곽경비를 담당하는 부대에서 사망한 노철승 씨 사건에 대해서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사망이라고 볼 수 없다고 기각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당시 헌병대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종결됐다는 점을 밝혔다. 정치적인 사건은 아니지만 군 당국에 의해 흔히 조작되는 군대 내 사망사건의 전형을 드러낸 점은 성과로 지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