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이스라엘군의 탱크에 맞서 죽어 가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보면서 우리는 분노한다. 독립을 하기까지 인도네시아군의 총에 무수히 학살당한 동티모르 민중들을 기억한다. 2차 대전에서 유태인과 집시 등을 말살하려 했던 나치를 증오한다. 하지만 정작 50년 전 한국전쟁전후 바로 이 땅에서 학살됐던 민간인들은 여전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다.
최근 잇따른 피학살자 유족들의 증언이 우리의 무감각을 일깨우고 있다. 파주, 속초, 단양, 대전, 남원, 진도, 여수, 거제, 함안, 포항, 제주 등 전국에 걸쳐 학살현장이 발굴되고 있다. 여기서 학살된 원혼들은 유골이 되어 당시의 참상을 고발한다. 이승만 정권에 반대했기 때문에 형무소에 수감된 이들은 정권안보 차원에서 죽어야 했다. 사상전향을 목적으로 강제 가입됐던 보도연맹원들도 무조건 죽임을 당했다. 공비 몇 명을 색출하기 위해 일가족 및 마을주민 모두가 무차별 학살당한 예도 허다했다. 이들은 죽어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단 한 차례의 재판도 받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야 했다.
이렇게 학살된 수가 1백13만으로 당시 남한인구의 20분의 1이다. 학살의 90% 정도가 한국 군·경과 우익단체에 의해 자행됐다는 사실은 '한국전쟁 당시 한국정부가 인민군의 양민학살에 대한 보복으로 좌익을 죽였다'는 기존의 상식을 송두리째 날려버린다. 엄청난 피해규모는 학살이 국가권력에 의해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자행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비극적인 사실은, 다 알다시피, 당시 학살의 주범들이 지배권력의 중심에서 똬리를 틀고 이 나라를 사실상 좌지우지해 왔다는 점이다. 70년대 베트남학살, 80년 광주학살로 이어지는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들은 지난 50년간 떵떵거리며 한국 현대사를 학살자의 관점으로 정당화했고, 이에 따라 유족들은 언제 '빨갱이'로 몰릴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해 왔다.
캄캄한 침묵을 접고 시작된 피해유족들의 증언이 정의의 물꼬를 트고, 역사적 진실 규명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가해와 피해의 관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현실을 바로잡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국가권력이 반인권적 과거를 청산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나서게 하는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통합특별법' 제정운동이 필수적이다. 학살자의 오만으로 점철된 역사를 다시 쓰지 않는 것은 오늘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