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야 이 나라의 노동정책이 바뀔 수 있겠습니까?" 지난 달 26일 분신해 31일 끝내 숨진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 이용석 광주전남본부장은 노대통령에게 남긴 유서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5일 다산인권센터, 인권운동사랑방 등 29개 인권단체들이 주최한 '노동탄압 증언대회'에는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는 절규가 근로복지공단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증언하는 노동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식물인간' 만드는 손배·가압류
지난 달 17일 목을 맨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이 유서에서 "노동조합을 식물노조로 노동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든다"고 고발한 손배·가압류는 다른 사업장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효성해복투 정용준 씨는 "해고자들의 기본 몸값이 100억은 된다"고 말을 꺼냈다. 2001년 113일 파업투쟁을 벌였다가 패배한 효성 노동자들은 해고된 평조합원들 마저 350억 원이 넘는 가압류의 사슬에 묶였다. 정 씨는 "손위 동서 명의로 되어 있는 전세 아파트까지 가압류 돼 처갓집 갈 때마다 피해 다니는 신세가 됐다"며 "구속은 육체만 묶어 놓지만 손배·가압류는 정신까지 묶어 놓는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태광 정리해고저지투쟁위 김형옥 씨도 "2001년 파업 이후 2년이 지났는데도 사측은 해고자들에게 117억 원의 손배·가압류를 걸어 놓고 있다"면서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는 심정이다"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의 지난 달 31일자 집계에 의하면 50개 사업장 1496억 원의 손배·가압류가 노동자들의 목을 죄고 있다.
'노조죽이기' 나선 정부와 자본의 결탁
노조 탄압의 다른 한 축에는 정부가 있다. 서울대공원 시설관리노조 노동자들은 "노조탈퇴서 가져오면 고용승계를 해주겠다"는 용역업체에 맞서 200일 넘게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노조만 해체하면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겠다"는 고집의 배경에는 "노사관계로 문제가 생기면 용역을 해지할 수 있다"는 용역계약 조항이 도사리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 정락준 부위원장도 "정부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해소 하겠다'고 공언하는데도 정부 산하기관인 공단은 오히려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태생이 다르다'며 무시한다"고 고발하면서 "근로복지공단에는 '근로'는 있어도 '복지'는 없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탄압에 맞서 투쟁을 결심한 노동자들에게는 경찰병력이라는 공적 폭력과 용역깡패 투입이라는 사적 폭력이 기다린다. 2001년 파업에 돌입한 효성노조에는 전기봉과 식칼로 무장한 용역깡패가 투입돼 농성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몰아냈다. 같은 해 6월 공장을 탈환하기 위해 모인 노동자들 앞을 가로막은 것은 일만여 명의 전경들이었다. 이 투쟁으로 구속된 노동자는 23명에 이르렀지만 당시 폭력을 일삼았던 용역깡패들은 경찰의 형식적 수사 끝에 일괄 무혐의 처리됐다. 올해 노동부 국감자료에 의하면 구속 노동자는 144명에 이르지만 부당노동행위로 구속된 사업주는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정부의 편파성은 극에 달해 있다.
한편 6일 1차 총파업과 12일 전면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12일 이전에 △정부 자신이 제기한 400억대의 공공부문 손배·가압류를 즉 각 취하하고 △정부기관의 비정규직을 먼저 정규직화 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요구했다.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