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인권영화제에서는 주류 영화에서 관심을 두지 않는 어두운 변방의 목소리를 다채로운 방식으로 표현한 총15편의 국내 인권 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
인권영화제의 국내 상영작 중에는 연륜이 쌓인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신작들이 눈길을 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본지 2004년 1월 10일자 참조)를 비롯한, <학교>, <노들 바람>등이 바로 그것.
덕성여대 민주화 투쟁을 기록한 <학교>는 지난 90년에 시작된 덕성여자대학교 민주화 투쟁의 다사다난했던 역사를 세밀하게 기록하며, '학교'의 존재 목적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슬며시 물음을 던진다. 작품은 지난한 시간의 연대기 속에 채워진 복합적인 관계의 실체에 접근하면서, 여전히 '학교' 공동체의 건강한 형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노고에 주목한다. 몇 년 동안 장애인권에 녹록치 않은 관심을 표명하며 작품 활동을 펼쳐 온 박종필 감독의 신작 <노들 바람>도 이번 영화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씨앗을 뿌려온 노들 장애인 야간 학교 내부의 이른바 '검정고시와 운동의 갈등'을 다룬 이 작품은, 명료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불가피한 현실의 무게를 전한다.
정치적 소수자에 자리한 여성의 삶을,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영화들도 이번 영화제에서 소개된다. '여성'을 주제로 꾸준히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온 김진열 감독은 <잊혀진 여전사>에서 반공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제의 고달픈 지배를 받아 한국의 현대사에서 쉽게 잊혀졌던 '여성' 빨치산의 존재를 복원시키고자 한다. <엄마…>는 어린 딸의 엄마이자 한 여성 노인의 딸이기도 한 감독이 본인과 가족의 삶의 역사를 진솔하게 드러내며, 여성의 결혼과 가족에 대한 고찰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높은 언덕>은 한 터키 시골의 별다르지 않은 나날들을 관찰하면서, 생계 부양자이면서도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내재화 된 터키의 부당한 현실을 감내해야 하는 터키 여성들의 갑갑한 오늘을 지긋이 부각시킨다.
다양한 실험적 기법들을 선보이거나, 장르적 특성을 효과적으로 살려 오늘날의 이면을 반추하는 영화들도 있다. 윤성호 감독의 <산만한 제국>은 다국적 기업, 저질화 된 상업 방송, 투기 자본, 네이스, 민영화, 노동 탄압 등이 존재하는 그야말로 '산(山)만한 제국'이 뻗쳐 있는 오늘날에 대하여 프리즘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많은 것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어떤 것을 시작할 수는 있다"고 말한다. 정리 해고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어떤 노동자 가족의 생활을 잔잔히 비추는 드라마 <빗방울 전주곡>은 등장 인물들의 일상에 침투해 있는 고단함이 실은 어디에서 기인했는가를 극적으로 드러내며 묻혀진 노동 탄압의 진실과 마주한다.
또한 전쟁으로 인하여 황폐화된 디스토피아의 세계에서 노동하며 살아가는 어린 영혼의 맑은 꿈을 인상적으로 표현한 애니메이션 <하늘나무>, 이라크 전쟁을 주도하고 동참한 무리들을 풍자하는 뮤직 비디오 <누구를 위하여 총을 울리나>등도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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